문정인, 푸틴이 김정은에 최첨단 軍기술 넘길 가능성 낮다 본 이유
"전쟁을 막기 위해 예방 전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예방 외교가 필요하다."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는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사단법인 '민주주의 4.0' 주최로 열린 '사라진 한반도 평화, 대안은'이라는 주제의 현안 특강에 나서 이같이 강조했다.
민주주의 4.0 연구원은 지난 2020년 11월 출범한 연구단체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주의 2.0 정신과 철학을 이어받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 계보를 이어 4기 민주정부 출범을 위해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2대 국회 임기 시작 이후 이날 첫 번째 현안 특강을 진행한 것이다.
문 교수는 우리나라 외교안보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과 동북아번영정책 설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 '햇볕정책 전도사'로 불리며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로 활동했다. 또 2000년, 2007년, 2018년 모든 남북정상회담에 특별수행원으로 참가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날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가 고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들이 나왔다.
문 교수는 칼 포퍼의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인용해 한반도에서 평화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평화의 적들이 많아서"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한반도 평화의 적들로 △냉전 자유주의의 망령 △북한에 대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과소평가 △공세적 군사억제론의 함정 △동맹 중독증 △최대한의 압박 그리고 제재의 허상 △전쟁 피해 불감증 △전쟁광들 등 7가지를 꼽았다.
문 교수는 "윤석열 정부에서 위기론이 고조되고 있고 주적론, 선제타격론, 즉각적 응징 보복론 등이 나오는 등 군사 교리가 변화하고 있다"며 "북한도 상당히 공세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위기가 고조된 구체적 이유로 △차단된 핫라인(통신선) △남북 군사합의서가 폐기되는 등의 가드레일이 제거된 현실 △막후 외교채널마저 실종 △무력해진 강대국 외교 채널 등을 꼽았다. 이런 가운데 올 초부터 미국 등에서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가 잇따라 나오는 데까지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문 교수는 "전쟁을 막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통신선인데 남북한 간 통신선이 다 차단된 상황"이라며 "전쟁을 막기 위해 예방전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예방외교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통신선 같은 자산이 필요한데 그게 사라졌다"고 했다.
이어 "(남북간)계획에 의한 전쟁의 가능성은 적지만 우발적 충돌이 핵전쟁으로 갈(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문 교수는 또 "지금 현 정부가 생각하는 평화는 엄격한 의미의 평화가 아닌 안보, 또는 카르타고식 평화"라며 "평화는 승리해서 가져오는 게 아닌 양보와 타협을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란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주장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카르타고식 평화란 적을 압살하는 방식으로 분쟁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해 이루는 평화를 뜻한다.
약 한 시간의 강연 이후 30분 넘는 시간동안 열띤 질의응답 시간도 이어졌다.
'돌고 도는 평화만이 대안일텐데 평화 프로세스는 어떻게 이룰지가 고민'이라는 질문에 문 교수는 "평화 프로세스라는 개념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며 "교류협력이 1단계, 남북 정상·국회·각료 간 회담의 제도화가 2단계, 궁극적 통일이 3단계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교류협력인데 그 핵심은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 쌍방이 자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과 김 국무위원장 간 정상회담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문 교수는 푸틴 대통령이 최첨단 군사 기술을 북한에 넘길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문 교수는 "정찰 위성과 관련한 기술 지원은 가능하겠지만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재진입 기술이나 극초음속 같은 기술 공유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러시아에서 현대차 기아와 같은 기업들이 인기있고 러시아는 한국과의 협력 가능성도 중시한다. 또 (북한과 러시아가 주고받은)손익 계산만 봐도 (최첨단 군사 기술)양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민주주의 4.0 연구원은 차기 이사장에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차기 원장에 김영배 민주당 의원을 각각 내정했다고 밝혔다.
송 의원은 "우리나라에 필요하고, 민주당이 나아갈 길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민주주의 4.0이 되겠다"며 "오늘 강연 중 평화·통일 문제 있어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부분이 민주주의 국회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라 생각한다. 국회가 숙의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은 "민주주의 4.0이 연구활동의 플랫폼이 되도록 열심히 해보려 한다"며 "연구활동과 학습에 중점을 두고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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