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의 말장난 [뉴스룸에서]

황춘화 기자 2024. 6. 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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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지난 15일 오전(현지시각)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공항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고도시 사마르칸트로 향하며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춘화 | 사회데스크

법은 어렵다. 정확히 말하면 법조문에 쓰인 법률 용어가 어렵고, 이를 사용하는 법률가의 언어가 어렵다. 법률 문장은 길고, 어지럽고,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이처럼 법률 용어가 어려운 이유를 기득권 유지의 방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법학자 프레드 로델은 언어 독점은 잡은 권력을 놓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에서 법률가들이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법률가의 말장난이 논란거리다. 시민단체로부터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신고받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가 법정 신고 처리 기한(최장 90일)을 훌쩍 넘겨 사건을 종결 처리하며 기괴한 법 논리를 내놓은 탓이다.

정리하자면 ‘①청탁금지법에는 배우자 처벌 조항이 없다. ②명품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는 ‘국적이 외국’이라 가방은 국가기록물이다. 대통령기록물법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은 신고 의무가 없다 ③헌법 84조 불소추특권에 따라 대통령은 기소뿐 아니라 조사·수사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사건을 더욱 검찰에 송부 또는 이첩할 수 없다’는 게 권익위의 법 논리다. 영부인이 명품 가방을 받는 모습이 온 나라에 방송됐지만, 아무리 따져봐도 종결 외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

권익위 전원위원회에서 이런 논리를 주도한 이들은 유철환 위원장과 박종민·정승윤·김태규 부위원장으로, 판사·검사 출신인 이들은 윤석열 정부 이후 권익위 주요 보직을 꿰찬 ‘친윤’ 법률가들이다. 윤 대통령이 건넨 임명장 덕에 권익위에서 장차관급 대우를 받는 이들은 대통령 부부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부패방지권익위법과 공직자윤리법을 제멋대로 해석한 데 이어, 헌법까지 동원해 대통령에게 ‘수사 방탄권’을 부여했다. 지겹디지겨운 ①번과 ②번 주장에 대한 비판은 제쳐두고, 정말 대통령은 임기 중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조사·수사받지 않을 특권이 있는가.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일명 대통령의 불소추특권이다. 정 부위원장은 “불소추특권은 대통령은 기소만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조사도 받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위원회의 다수 의견이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권익위 설명과 달리, 법조계 다수 의견은 ‘불소추특권은 기소만 못 할 뿐이지 수사는 가능하다’에 가깝다. 우리 사회에서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현직 대통령을 수사할 수 있느냐’는 논의가 이미 이뤄진 바 있다. 당시 법률신문이 헌법·형법학자 92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72%가 “현직 대통령 수사가 가능하다”고 했고, 뉴스1이 실시한 헌법학회 소속 헌법학자 20명 조사에서도 19명이 “대통령도 수사 대상”이라고 답했다.

법학자들은 형사상 특권을 확대해석해서는 안 되며, 이를 과도하게 적용할 경우 역시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고 본다. 대통령이 중대한 형사범죄를 저질렀다면,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헌법 원리에 맞는다는 취지다. 나아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마저 불가능하다면 재직 중 증거인멸이 이뤄져 퇴직 뒤 수사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절차적 하자가 없는 ‘잘못된 결정’인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권익위의 김 여사 사건 종결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18일 위원직을 사퇴한 최정묵 권익위 비상임위원은 “그냥 본인의 업무를 충실히 하는 것” 외에 조직을 바로 세울 길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직자 한분 한분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달라.” 1년여 전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권익위를 떠난 안성욱 사무처장 역시 해법은 무너진 상식과 법치를 세우는 데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떠난 자의 목소리가 남은 자들에게 닿기를, 부끄러움은 떠난 자들의 몫이 아니기를. 대한민국 공직자들 그리고 윤 대통령의 언어가 국민의 상식과 가까워지길 바라본다.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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