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우울 [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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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대학사회에는 희망과 충만감, 우정과 연대보다는 우울과 무력감이 지배하고 있다.
대학은 그 사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학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발터 벤야민의 독일어 편지를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자, 평생 두만강 유역의 방언과 우주의 신비에 대해 탐구하는 연구자를 배출할 수 있을까? 그들의 순수한 학문적 열정과 비전이 대학 재학 단계에서부터 좌절되고 소외되는 사회, 그건 새로운 야만의 한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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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우 | 숙명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언젠가부터 대학사회에는 희망과 충만감, 우정과 연대보다는 우울과 무력감이 지배하고 있다. 어느 곳이나 모순과 그늘은 존재할 텐데, 문제는 그 해결의 비전은 보이지 않은 채 외려 지금보다 더 악화되리라는 정조가 이 시대 대학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내년부터 대폭 확대되는 무전공 입학제는 대학사회와 학문의 근간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태풍이다. 기본적으로 백화점식 학과 시스템에 갇힌 입학제도의 유연성이 필요하며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전통적인 대학 제도와 교육과정에 대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명제이리라. 하지만 의도가 좋다는 것과 그 제도의 성공은 완전 별개다. 외국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제도라 할지라도, 한국사회에 그 제도가 수용되면 애초의 긍정적 취지는 휘발되고 변질되는 경우가 흔하다. 가령 입학사정관제도나 논술, 자소서 등의 학생부 전형의 운용 실태를 보면, 원래 이 제도가 상정했던 취지가 온전히 구현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테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는가. 대학은 그 사회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과 직업 소득의 양극화가 펼쳐지는 사회에서 오로지 대학만이 품격과 다양성을 지닐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성적이 우수한 수험생들 대다수가 의대를 지망하는 것도 바로 한국사회를 둘러싼 배금주의의 정확한 반영이다. 마치 전격적으로 작전을 펼치듯 일시에 확대된 무전공 입학제 역시 그 애초의 취지보다는 조금이라도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문을 선택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다분하다. 이에 따라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을 비롯해 취업 전망이 불확실한 기초학문의 고사가 예견된다.
이런 대학 분위기에서라면 나름대로 소신을 지니며 천문학 연구원이나 고고학자를 꿈꾸었던 극소수의 청년도 자신의 꿈을 계속 유지하기 힘들 테다. 앞으로 대학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나 발터 벤야민의 독일어 편지를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자, 평생 두만강 유역의 방언과 우주의 신비에 대해 탐구하는 연구자를 배출할 수 있을까? 그들의 순수한 학문적 열정과 비전이 대학 재학 단계에서부터 좌절되고 소외되는 사회, 그건 새로운 야만의 한 양상이다.
중요한 건 다양성이다. 대부분의 대학이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 불과 몇 달 사이에 수동적이며 획일적인 방식으로 무전공 입학제를 채택했다. 창의적이며 주체적인 교육철학을 지닌 대학, 세인트 존스 칼리지 같은 자유 교양대학이 한국에서 존재하기란 무망하다. 납작한 실용주의가 온통 대학을 지배하고 있다. 제언하거니와 이러한 대학사회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거스르기 쉽지 않다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안목, 예술과 문화에 대한 세심한 감각을 키우는 교양교육이라도 한층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즈음 지난해 말 새롭게 번역 출간된 세계문학의 고전인 제임스 조이스의 장편소설 ‘율리시스’를 읽는 중이다. 한국어판으로 1400쪽에 가까운, ‘언어실험의 결정체’라 불리는 이 난해하면서도 매력적인 작품의 번역에 얼마나 오랜 노고와 정성이 바쳐졌는지를 가늠하기 힘들었다. 앞으로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설사 인공지능을 활용해 ‘율리시스’를 번역한다 할지라도, 그 오류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번역자가 대학교육을 통해 나올 수 있을까? 이제야말로 대학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한 발본적인 논의와 토론이 필요한 시기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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