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중산층 세금' 개편, 이번엔 믿어도 될까
부유층 넘어 중산층 부담 보편적 세금
與 감세 드라이브에 野 일부도 “손질”
정치·이념전쟁 아닌 입법으로 개혁을
세금은 이념과 정치의 전쟁터다. 애초에 절대적 합리성을 갖춘 세금이란 없다. 계층 및 사회 세력 간 갈등과 조정 과정을 통해 조세 제도가 마련된다. 정부의 각종 공공 서비스 제공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나 이해한다. 하지만 나더러 그 돈을 내라고 하면 불만을 갖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구성원 간 유불리가 갈리기 때문에 조세 제도를 바꾸는 일은 사회의 난제다. 세금이 누더기여도, 시대에 맞지 않아도, 부작용을 초래해도 역대 정부와 정치권이 ‘땜질’만 할 뿐 ‘개혁’에는 눈을 질끈 감는 이유다. 이렇게 미봉책으로 때우거나 방관해온 세금 중에서 최근 종합부동산세·금융투자소득세·상속세에 대한 개편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지지율이 바닥인 윤석열 정부가 감세 정책 드라이브를 걸었고, 감세라면 펄쩍 뛰어온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손질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유가 있다. 이 세금들이 일부 부유층을 겨냥했던 도입 목적과는 달리 이제 중산층에까지 부담을 지우는 보편적 세금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민심을 잡기 위해 여야 구분 없이 세제 개편 어젠다를 띄우는 것이다.
종부세는 도입 첫해 주택분 기준 부과 대상자가 3만 6000여 명, 세액은 391억 원에 불과했다. 그간 부동산 폭등으로 인해 2022년에는 119만 5000명에게 3조 3000억 원에 달하는 납세고지서가 뿌려졌다. 과세 기준 완화와 집값 하락으로 지난해에는 과세 대상자와 세액이 각각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경제적 공동체인 가족 구성원까지 포함하면 약 100만 명 이상이 종부세 영향권에 있다. ‘부동산 투기꾼’을 잡겠다며 도입한 종부세가 중산층의 주머니를 터는 세금으로 변질된 셈이다.
상속세도 더 이상 부자 부모를 둔 행운아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상속인 공제 한도 10억 원은 1997년 이후 그대로다. 이제는 웬만한 집 한 채를 물려받으면 상속세를 내야 한다. 전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며 자산을 축적한 1940~1950년대생들이 고령화되면서 곧 ‘대(大)상속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상속세를 이대로 두면 중산층도 세금 쓰나미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내년 시행을 앞둔 금투세의 경우 납세 예상 인원이 2022년 말 기준 15만 명으로 주식 투자자 중 1%로 추산되지만 그들만의 세금으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금투세는 세원(稅源)의 이동 가능성이 매우 큰 세금이다. 실제로 개인들은 부진한 ‘국장(한국 증시)’을 떠나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미장(미국 증시)’으로 옮겨가고 있다. 조세 회피를 위해 큰손이 ‘주식 이민’을 가면 한국 증시의 유동성은 더 줄고, 과세 대상이 아닌 개미 투자자들도 직격탄을 맞게 된다. 게다가 현행 금투세는 장기 투자에 대한 우대가 없어 한국 증시는 단타 놀이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여당에서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다.
‘중산층 세금 3종 세트’의 전면 개편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으나 구체적 논의에 들어가면 정치적·이념적 전쟁이 벌어질 것이 불보듯 뻔하다. 세금을 폐지하거나 세율을 낮추면 다른 데서 세금을 벌충하거나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 일례로 종부세가 재원이던 지방부동산교부금이 없어지면 지방자치단체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문제는 정치권이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 구성원 간 이해·갈등 조정을 통해 합리적인 정책 방향을 도출하는 것이 정치의 몫인데 국회는 문을 연 지 20일이 지나도 상임위 구성조차 못 하고 있다.
여소야대(與小野大) 국면이라도 유능한 정부라면 어떻게든 정책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문제 해결 능력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의대 정원 증원 문제만 해도 대통령이 초반에 ‘2000명 정원’을 못 박으며 의료계와의 대화의 여지를 없애버렸고 의정 갈등은 장기화됐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최근 최고 상속세율을 현재의 절반인 30%로 낮추고 종부세는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감세에 따른 대체 세원이나 지출 구조조정 방안 등의 대안을 치밀하게 마련하지 않고서는 ‘부자 감세’ 프레임이라는 무기를 내세운 야당의 반대를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중산층을 두텁게 할 ‘중산층 감세’가 이번만은 제대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이혜진 논설위원 hasim@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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