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가 가면 곧 길이다[★인명대사전]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다.”
블랙핑크 제니가 개인 소속사 OA(오드 아틀리에)를 차린 지 약 6개월, 제니의 그간 행보를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일 듯 싶다.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전 세계인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있음에도 그는 그 어떤 부담 없이 ‘내가 가고픈 길을 간다’라는 듯 보인다. 그렇게 그의 걸음은 자유로우면서도 영민하다.
블랙핑크 제니(JENNIE )가 지난 18일 국내 최초로 열린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청음회에 MC로 나섰다. 이날 질의응답 시간에 제니가 등장하자 현장엔 큰 환호성이 터져나왔고, 제니는 “빌리 아일리시의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는 팬으로서 인터뷰하기 위해 나왔다”라면서 “함성은 빌리를 위해 아껴 달라”고 그를 소개했다.
제니는 이날 역시 글로벌 패션 아이콘 다웠다. 마이크로 쇼츠 팬츠에 빈티지한 장식이 돋보이는 재킷, 그리고 복싱화를 신고 등장했다. 반가운 마음을 숨길 수 없다는 듯 발을 동동거리며 빌리 아이리시를 꼭 끌어안는 그의 모습은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제니는 이어 센스 있는 입담과 유려한 영어 실력으로 빌리 아이리시와 대화를 나누며 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제니가 거기서 왜 나와?”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아이돌로서 이 같은 행보는 이례적이다. 최근 자크뮈스의 패션쇼 런웨이에 등과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의상을 입고 모델로 선 것에 이어 이번 깜짝 등장 역시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미 샤넬, 캘빈클라인등 세계 톱 브랜드의 글로벌 앰버서더로 활동 중인 그다. 독창적이기로 유명한 자크뮈스의 쇼를 위해 붉은 수건 한 장을 걸치고 카메라 앞에 눕는다거나, 피날레 모델로서 그와의 친분을 과시한 행보는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같은 대형 자본에 이미지를 선택·소비 당하는 것에 그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도 보여진다.
제니는 지난해 12월 24일 OA 설립 공표 후 유튜브를 통해 자신이 직접 꾸민 소속사를 소개하며 랜선 집들이를 가졌다. 이어 2월에는 tvN 예능 ‘아파트 404’에 고정 출연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YG라는 큰 울타리를 벗어난 제니의 행보에 걱정이 쏠린 것도 사실이다. 제니가 십 대 시절부터 5년 넘게 대형 기획사 YG 엔터테인먼트 연습생 기간을 거친 뒤 그 안에서 글로벌 최고 가수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연예계는 매니지먼트의 힘이 상당히 세다. 이에 그 울타리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K팝 신에선 인기와 함께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1인 매니지먼트를 차리거나 소속사를 옮겼다가 전 만 못한 활동을 하게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제니는 역시 제니였다.
제니는 지난해 HBO 드라마 ‘디 아이돌’을 통해 배우로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작품성 논란과 함께 처참한 시청률을 맞이했고, 조기 종방했다. 보통 큰 좌절을 겪고 나면 의기소침하기 마련이지만 제니는 달랐다. 더욱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 대중에 한발 다가서려 노력했다. 선배 가수 이효리가 진행하는 KBS2 ‘이효리의 레드카펫’에 발레슈즈에 하얀 망사스타킹을 신고 총총 등장해서는 “효리 언니와 친해지고 싶었다”고 말하는 사랑스러운 그다.
샤넬 화보 컷 속 제니는 브랜드 이미지 안에 갖혀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만의 샤넬 스타일을 뽐낸다. 기존 국내 톱스타들이 속옷 광고 컷에서 이미지 관리를 위해 ‘덜 벗은’ 모습을 택했다면 제니는 반대였다. 더욱 과감한 표현으로 그는 자신과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냈다. 일본에서 열린 안경브랜드 팝업스토어 행사장에선 누구도 소화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긱시크’ 스타일로 누리꾼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모았다.
제니의 광고 컷, 그리고 SNS 포스팅은 그야말로 ‘살아있다’.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계약관계 속 의무로 이뤄진 작업물이 아니라는 것은 보는 사람들이 먼저 안다. 눈치보지 않는 ‘육각형’ 아티스트 제니는 지금도 지구 전체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명품 브랜드의 모델, 아이돌 그룹의 래퍼로 가두기에 제니의 그릇은 너무나 크다.
강주일 기자 joo102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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