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내년 R&D 예산이 위태롭다
"예전 같으면 연구개발(R&D) 예산을 더 확보하기 위해 각 부처 소속 연구기관들이 부처 문턱이 닳을 정도로 찾아 왔는데, 올해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네요. 지난해 'R&D 삭감 사태' 이후 연구기관들의 예산 확보 의지가 없어졌는지, 아니면 정부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체념의 표출인지 모르겠습니다. 올해처럼 기관 예산 담당자들의 방문이 뚝 끊긴 적은 없었던 거 같네요."
6월은 정부 부처들 사이에 이른바 '예산 편성 전쟁'이 시작되는 달이다. 기획재정부는 이 달부터 각 부처가 요구한 내년도 예산안 심사에 본격 들어갔다. R&D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중심으로 내년도 '국가 R&D 예산 배분·조정안' 마련에 한창이다. 이 달 안에 내년도 부처 예산 편성뿐 아니라 국가 R&D 예산의 초안이 완성되는 중요한 시기인 셈이다.
그러나 예년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느낌이다. 기재부와 과기정통부를 상대로 한 푼의 예산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걸면서 치열한 예산 편성 전쟁을 펼쳤던 부처·기관 예산 담당자들의 모습이 뜸해진 것이다.
과기정통부가 마련한 R&D 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은 이달 말 국가재정전략회의에 보고된다. 이후 대통령이 위원장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상정돼 심의를 거쳐 확정되면 기획재정부에 제출된다. 이 과정까지 과기정통부의 몫인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1년 전인 지난해 6월 30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과기정통부가 마련해온 2024년도 국가 R&D 사업 예산·배분안에 제동이 걸렸다. 대통령이 '나눠먹기식·갈라먹기식 R&D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해 예정된 절차가 올 스톱됐다. 다음날 열릴 예정이었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연기됐고, 과기정통부는 다시 R&D 예산 배분·조정 작업에 착수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수 개월 애써 마련한 R&D 예산 배분·조정안은 쓸모 없어졌고, 기재부에 알려야 하는 법정 기한(6월 30일) 준수 의무도 이행하지 못하는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과학기술법 제12조2의 5항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주요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내역을 6월 30일까지 기재부에 알려야 한다.
과기정통부는 다시 배분·조정안 보완 작업에 착수했고, 2개월 만에 출연연의 주요 연구개발 사업의 20∼30%를 일괄 삭감하고, 소규모 R&D 사업을 축소 또는 중단하는 등 R&D 사업에 메스를 들이댔다. R&D 현장에선 대통령과 정부의 갑작스럽고 맥락 없이 이뤄진 R&D 예산 삭감을 강력히 비난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연구비 부족으로 박사후연구원 등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실을 떠났고, 정치권에서 쟁점화되며 후폭퐁은 더욱 거세졌다.
상황이 커지자,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내년 R&D 투자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과학계 달래기에 나섰지만, 과학계의 마음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4.11 총선에서 과학계는 표심으로 정부를 심판했다.
그렇다면 정부의 약속대로 올해 삭감된 R&D 예산이 내년에는 복원될까. 일정 부분 복원은 되겠지만, 그 증가폭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우선 올해 삭감된 R&D 사업 예산을 기준으로 내년 예산안을 수립하도록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줬기에 복원된다 하더라도 큰 폭의 증가율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의 역점 투자 분야인 AI, 양자, 첨단바이오 등 12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해당하지 않는 R&D 사업은 올해보다 더 많은 예산 축소가 불가피하다.
여기에 정부의 동해 석유·가스전 시추 예산도 R&D 사업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돌발 변수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국가 채무와 나라살림 적자가 모두 역대 최대이고, 세수 펑크도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민생 분야에 국가 재정 투입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당장 재정 투입 효과를 걷기 어려운 R&D 투자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도 크다. 작년의 R&D 예산 삭감에 따른 기시감이 밀려오는 작금의 상황을 과학계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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