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밥은 하늘이다
집회나 농성에 가본 사람이라면, 유희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대표의 밥차를 기억할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그는 전국 집회 현장을 쫓아다니며 밥을 나눴다. 약자들이 싸우는 곳에서 그의 밥을 안 먹어본 사람이 드물 정도다. 돈은 받지 않았다. 처음엔 ‘장사하러 왔냐’ ‘밥값은 얼마냐’ 묻던 이들도 ‘맛있게 먹기만 해라’라는 그의 한마디에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한진중공업의 마지막 해고노동자 김진숙씨,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도 그를 만났다.
유 대표는 서울 청계천에서 노점을 했다. 노태우 정권이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노점상을 집중 단속하던 시기다. 그는 노점상을 싹쓸이하겠다는 정부에 맞서는 투쟁에 뛰어들었다. 장애인 노점상 최정환씨가 단속으로 손수레를 빼앗긴 후 서울 서초구청 앞마당에서 몸에 불을 붙였다. 1995년 3월21일이었다. 그날 이후 유 대표는 집회 현장에서 밥을 지었다. 최씨 빈소에서 국밥을 끓인 게 시작이었다.
유 대표는 가야 할 농성장이 떠오르면 반찬을 준비하고 밥을 했다. 밥을 보온상자에 담아 차로 날랐다. 가야 할 곳이 계속 늘어났다. 도와주는 사람들도 생겼다. 2016년 후원을 받아 푸드트럭 ‘밥묵차’를 장만하면서 나르는 밥의 양은 더 많아졌다. 그에겐 철칙이 있었다. 밥 앞에선 주는 사람이든 먹는 사람이든 웃어야 한다는 것이다. 굶지 말고 건강히 투쟁하자던 그가 췌장암으로 활동을 멈추기까지 해 먹인 밥이 얼마나 될지는 짐작도 안 된다.
그가 지난 18일 눈을 감았다. 생전 인터뷰에서 밝힌 묘비명은 ‘밥은 하늘이다’ 한마디다. 시인 김지하도 ‘그런 세상’을 꿈꿨다. ‘밥은 하늘입니다’란 시에서 그는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이고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 밥은 여럿이 갈라 먹는 것”이라면서 “밥을 나눠 먹자”고 외쳤다.
사람들은 안다. 시인 시구보다 함께 먹는 밥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그 힘으로 많은 이들이 싸움을 지속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폭염에도, 유 대표의 ‘밥 연대’는 노동자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시원한 밥 한 끼 나누자고 말해주는 듯하다. 그가 없는 밥묵차는 상상하기 힘들다. 그의 소원은 밥묵차가 가야 할 곳이 더 이상 없는 그날이 오는 것 아니었을까.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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