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우방’ 베트남 찾는 푸틴, 제재 회피 논의?… 미국 불쾌감

허경주 2024. 6. 19. 18: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일 0시 전후로 베트남 하노이 국빈 방문
"루블화-동화 간 거래 시스템 구축 가능성"
푸틴 방문 하루 앞둔 하노이, 경비 삼엄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과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지난 2018년 9월 러시아 소치에서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소치=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 국빈 방문 뒤 베트남으로 향했다. 구소련 시절부터 우호 관계를 다져온 두 국가는 무역과 경제,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 강화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對)러시아 제재에 앞장서고, 베트남에는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며 적극 구애 손길을 내밀어온 미국은 베트남의 행보에 불편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 5번째 베트남 방문

19일 베트남 관영 VNA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20일 0시 전후로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다. 이번 베트남 국빈방문은 응우옌푸쫑 공산당 총비서(서기장)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01년, 2006년, 2013년, 2014년 러시아 대통령 자격으로 베트남을 찾았다. 이번이 다섯 번째 방문이다.

베트남과 러시아는 1950년 수교 이후 70년 넘게 정치·경제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2012년에는 양국 관계를 최고 수준인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쫑 서기장을 비롯해 베트남 지도부 주요 인사와 1세대 기업가 상당수는 소련 유학파 출신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앞둔 19일 베트남 하노이 중심가에 공안이 경계를 서고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10년 만에 베트남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20일 새벽 권력 서열 2위 또럼 국가주석 주최 공식 환영식에 참석한 뒤 아침에는 서열 3위 팜민찐 총리와 조찬 회담을 한다. 이번 만남에서 양국은 무역 등 경제 분야에 초점을 맞춰 대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과 무역 등 경제 협력이 거의 단절된 러시아로서는 중국, 베트남 등 전통적 사회주의 우방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베트남 무역 규모는 36억3,000만 달러(약 5조 원)로 1년 전보다 2.3% 늘었고, 올해 1~5월에도 19억6,000만 달러(약 2조7,0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51.4% 급증했다.

로이터통신은 양국이 무기나 에너지 등 보다 민감한 사안도 논의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놨다. 러시아는 베트남의 최대 무기 공급 국가다. 또 러시아는 베트남과 합작회사 ‘비엣소프페트로’를 통해 남중국해 베트남 영해에서 최대 규모 유전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미국의 금융제재로 베트남에서 생산한 석유나 가스 수익을 넘겨받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 전문가인 칼 세이어 호주군사관학교 명예교수는 로이터에 “양국이 거래대금 지급을 위해 은행 시스템에서 러시아 루블화와 베트남 동화 간 거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해 9월 베트남 하노이를 국빈방문한 조 바이든(왼쪽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이 보반트엉(왼쪽 세 번째) 당시 베트남 국가주석 등과 건배하고 있다. 하노이=AP 연합뉴스

미국 “러시아, 전쟁 범죄 책임 있어”

푸틴 대통령의 베트남 행에 미국은 비난 목소리를 높였다. 주베트남 미국대사관은 “어떤 나라도 푸틴에게 침략 전쟁을 선전할 멍석을 깔아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잔학 행위를 정상화하는 것을 허용하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명백한 국제법 위반에 눈감을 수 없다”며 “전쟁 범죄에 책임이 있는 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금까지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중국 견제를 위해 베트남에는 적극 손을 내밀며 아낌없는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이 푸틴 대통령을 먼저 초청하고 실제 수장 사이 만남이 성사되자 불쾌감을 감추지 않은 셈이다.

이번 푸틴 대통령 방문이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 기조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동남아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이언 스토리 선임연구원은 “베트남이 특정 강대국 편을 들지 않는 균형 잡힌 외교 정책을 추구한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해 9월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하노이를 찾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앞둔 19일 베트남 하노이의 한 호텔 앞에 러시아 국기가 걸려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노이 시내, 거리 가득 러시아 국기 걸려

한편 20일 푸틴 대통령 방문이 예정된 하노이 중심가는 전날부터 삼엄한 경비 속 긴장감이 감돌았다. 19일 낮 주석궁 근처에는 10m마다 공안 대여섯 명이 배치돼 검문을 벌였다. 국회의사당 반경 100m 부근과 호찌민 묘소 인근 바딘광장 역시 관광객 등 일반인 접근이 금지됐다.

하노이 중심가에 위치한 소련 초대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 인근 단장이 한창이었다. 동상 인근에서 꽃 화분을 정리하던 한 노동자는 "푸틴 대통령이 반드시 거쳐갈 장소이기 때문에 어제부터 아름답게 장식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주베트남 우크라이나 대사관 바로 앞에도 러시아 국기가 걸린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앞둔 19일 베트남 하노이 중심가에 소련 국부 레닌의 동상이 서 있다. 하노이=허경주 특파원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