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 인터뷰] 강원에서 포텐 폭발! '우량주'로 성장한 '이상헌'이라는 탐스러운 열매
(베스트 일레븐=강릉)
터질 듯 터지지 않았던 잠재력이 마침내 폭발했다. 꼼수를 부리는 대신 정석대로 성실하게 축구에 집중한 결과다. 삶의 여러 고비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상헌의 나뭇가지에 풍성한 성공의 결실이 주렁주렁 맺히고 있다.
* 본 기사는 <베스트 일레븐> 2024년 6월 호 ON THE PITCH INTERVIEW를 정리한 것입니다.
이상헌은 2024시즌 들어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지난 시즌 부상과 함께 찾아온 공백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강원 FC로 이적해 '은사' 윤정환 감독과 재회하며 커리어의 새 챕터를 열었다. 3월 4경기에서 3득점을 터트린 이상헌은 4월 초 대구 FC-전북 현대와 연전에서 각각 멀티 골을 폭발했다. 팬들이 뽑은 3월의 선수로 선정됐고, 4월 강원 유니폼 판매 1위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5월 11일 대전 하나시티즌전에서 골을 기록한 뒤 네 경기 연속 침묵했지만, 지난 15일 하나은행 K리그1 2024 17라운드 수원 FC전 '멀티 도움'으로 다시 날아 올랐다. 2도움으로 팀의 3-1 승리에 앞장선 그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선정한 17라운드 공식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다.
시즌 초 활약이 빛을 발하던 지난 5월, <베스트 일레븐(b11)>은 강릉시 소재 강원 클럽하우스에서 이상헌과 만났다.
b11. 개막전에서 35초 만에 들어간 골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기분은 어땠나요.
"개막 경기라 워낙 준비를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 준비했던 만큼 열심히 해서 발에 맞고 들어갔는데, 운이 따랐어요. 지난해 포기하지 않았던 게 운으로 따라왔다고 생각해요. '포기하지 않았더니 운이 오는구나' 싶어 기분이 묘했죠."
b11. 친정팀 울산 HD와 만났던 경기도 궁금해요.
"제가 있었을 때의 울산과 지금의 울산은 정말 다른 팀이에요. 10년간 몸담은 팀이라 그 경기에선 정말 잘해야 하겠다는 생각밖엔 없었어요. 이만큼 컸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그런데 말 그대로 거의 탈탈 털렸거든요(웃음). 그래도 인사하러 갔더니 많은 팬분들이 반겨주시고, 단장님, 프런트 직원 분들도 반겨주셔서 좋았어요. 원정이었는데, 홈에서는 울산 한번 잡아보도록 하겠습니다(주: 인터뷰 이후 5월 19일 강원 홈에서 열린 울산과 맞대결에서 강원은 1-0으로 승리했다)."
b11. 지난 시즌엔 굴곡이 참 많았거든요. K리그1으로 오는 과정에서 고민이나 걱정은 없었을까요.
"음, 작년 이야기를 하자면 긴데요. 3라운드에서 수술할 정도의 발목 부상을 당했어요. 그래도 여름에 잘 복귀했습니다. 당시 부산은 안정적으로 팀이 잘 꾸려져 있는 상태였고, 좋은 위치에 있었어요. 다시 경쟁을 해야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전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하는데도 기회 받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K4리그에 부산 B팀이 있으니, 그 팀으로 갈 수 있게 직접 요청해서 경기력을 유지했어요. 덕분에 강원에서 동계 때도 잘 준비할 수 있었고, 이런 좋은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네요."
b11. 경기를 보면 움직임이라든지 결정력이 전과 비교해서 정말 발전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특별한 비결이 있었나요.
"스스로 이룬 발전도 물론 있었다고 보지만, 무엇보다 감독님들의 도움이 컸어요. 제가 고등학교 때도 포워드였는데요. 그때 봐주신 분이 윤정환 감독님이셨어요. 부산은 페레즈 감독님이 불러주셔서 갔었고요. 울산에선 정말 수비를 아예 할 줄 모르는 선수였거든요. 페레즈 감독님께서는 공수에서 개인 능력치, 밸런스 같은 부분들을 중요시했는데, 그곳에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해요. 윤 감독님이 지금 전방 공격수 포지션(투 톱)으로 저를 써주시는데, 그간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제가 지닌 능력을 잘 뽐낼 수 있었죠."
b11. 최근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부족하다거나 더 나아지고 싶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우선 수비 부분이요. 아직 보완해야 할 게 많아요. 활동량도 더 필요하죠. 시즌은 긴데, 컨디션에 따라 활동량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체력도 잘 보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좋은 분위기 속에선 신바람이 날 때도 있지만, 주춤할 때도 좋은 흐름을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집중력을 가지고 좋았을 때만 생각하면서 나아가고 싶어요."
b11. 윤 감독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지난 시즌 감독님이 강원에 오셨을 때 내심 기대도 됐을 것 같아요.
"내심 불러주실 거라는 생각은 했죠. 일본 가셔서도 저를 몇 차례 불러주셨거든요. 하지만 이적이라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타이밍도 안 맞았고요. 이번에는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져서 함께할 수 있었어요. 저는 감독님만 바라보고 왔어요. 이렇게 편하게 대해주실지 몰랐는데, 되게 잘 해주세요. 저도 잘하자는 생각뿐이에요. 정말 실망 안 시켜드리고 싶거든요. 냉정하신 분이기도 하니까, 잘하겠습니다. 하하."
b11. 편하게 해 준다라… 상헌 선수에게 유독 관심이 있으신가 봐요.
"딱히 별 말씀을 해 주시지는 않으세요. 최근엔 '한 번 찬스 올 때 딱 집중해서 넣어야 해'라고만 하셨어요. 그런데 울산전 끝나고 개인 운동을 더 많이 해서 오히려 몸이 더 무거워졌거든요. 그때 감독님께서 5일 내내 '몸이 왜 이렇게 무겁냐'라는 잔소리만 하셨어요. '안 하던 거 하니까 그런다. 하던 것만 잘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계속 지켜보시면서 사소한 것도 잘 캐치하시는 것 같아요. 다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b11. 이쯤 되면 상헌 선수와 윤 감독,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요.
"저는 진짜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작년 기록도 없는 선수를 이렇게 불러서 기회를 마련해준다는 게, 감독님 입장에선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잘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아는 감독님은 울산에서 들었을 때 훈련량이 엄청 많은 감독님? 여기 와서 보니, 보듬어 주시고 훈련이 힘들다기보다는 정말 필요한 것만, 핵심만 딱딱 짚어서 하시는 것 같아요. 예전과는 많이 달라지셨죠."
b11. 감독님도 이제 고수가 되셨군요.
"네. 맞아요."
b11. 윤 감독의 강원에서 상헌 선수는 어떤 역을 주로 맡고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수비 시에는 전방에 있는 포지션이다 보니 압박이라든가 타이밍 측면에서 판단을 잘해야 해요. 공격 상황에서는 빌드업에서의 포지셔닝마다 서야 할 위치가 있고요. 또 강원이 공을 잘 소유하는 팀이 되어가는데, 공을 빼앗기지 않고, 결정적인 찬스에서는 골을 넣는 역을 하고 있습니다."
b11. 어떻게 보면 4부에서 1부로 오게 된 셈이에요. 오자마자 적응하기 힘들지는 않았나요.
"처음엔 정말 쉽지 않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도 작년에 포기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많이 믿고 있었어요. 부산에 있을 때, 저는 오히려 전보다 못한 거 없이 더 잘했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도 왜 안 뛰냐고 많이 물어보기도 했어요. 여기 와서는 감독님께서 믿고 기용을 해 주시니 적응을 더 잘 할 수 있었죠."
b11. 여러 팀을 경험해 봤는데요. 강원 자랑, 한번 부탁해도 될까요?
"강릉에서 지내는데, 참 맛있는 게 많고요. 또 제가 커피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예쁜 카페도 많고, 조용해서 축구에 딱 집중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b11: 전남은요?) 아, 광양이 제일 조용한데, 부산은 너무 화려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b11. '인간 이상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까요. 지난 2년간 아픔이 많았어요. 큰일을 겪으면 사람이 변한다고 하잖아요.
"어머니께서는 늘 지켜보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거짓말하거나 나쁜 행동은 절대 못 하겠더라고요.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늘 그랬듯 성실한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그러더라고요. 쓰레기 하나 줍는 선행도 다 자신에게 운으로 돌아온다고요. 성실한 사람이 되는 게 인생의 주된 소신인 것 같아요. 떳떳하고, 당당하고, 성실한 사람이요. 울산에서 경기에 못 나갈 땐 방에서 진짜 많이 울기도 했고, 작년에 다쳤을 때도 정말 속상했어요. 그 스트레스를 속으로 품고 있는 스타일이라, 심할 땐 원형 탈모까지 왔어요. 그래도 힘든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b11. 슬럼프가 올 때는 어떻게 이겨내는 편인가요.
"좋았을 때만 생각해요. 한 골이 터지면 또 두 골이 터질 수도 있는 거고, 계속 좋은 생각만 하려고 해요. 긍정 마인드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팀에서 주는 피드백도 듣고요. 제 골보다는 다른 골들을 보고 있어요. 자신을 믿고, 가족들 생각하면서 이겨내요."
b11. 20대 청년으로서 군대 걱정도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팬들도 많이 이야기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2년 안에 가야 해요. (김천) 상무는 직전 2년 기록을 가장 많이 보더라고요. 많은 경기를 출전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상무에 도전할 수 있는데, 지금 두 번 도전했다가 다 떨어졌거든요. 앞으로 경기 많이 출전하고 좋은 모습 보인다면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b11. 유망주 타이틀을 뗐으니, 제대로 이상헌을 알릴 때입니다. 앞으로 얻고 싶은 타이틀이 있나요?
"K리그1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이 팀을 대표하는 선수요. K리그1이라고 하면 지금은 이청용·기성용, 이런 이름들이 나오잖아요. 아직은 멀었지만, 언젠간 저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b11. 마지막으로 강원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경기장에서 그 걸개 봤거든요. '상헌 우리는 너를 믿어.' 프로 와서 개인 걸개는 처음 봤는데, 참 뭉클했죠. 큰일을 당했을 때 많은 분들이 응원해 주셨으니 행동 하나하나 조심하면서, 인생도 축구도 교과서처럼 잘 헤쳐 나가려고요. 올 시즌은 지난 시즌의 광주 FC처럼 강원이 돌풍의 팀이 되어서, 시즌 끝날 때는 팬 여러분과 팀원들 모두 해피엔딩으로 마치고 싶어요. 더 노력하고, 잘하겠습니다!"
글=김유미 기자(ym425@soccerbest11.co.kr)
사진=김동하 작가,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 일레븐 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Copyright © 베스트일레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