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 날씨에 군중 동원…‘당일치기’로 축소됐지만 성대하게 진행된 푸틴 방북

곽희양 기자 2024. 6. 1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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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평양 시내에서 북한 주민들이 푸틴 대통령을 태운 차량을 향해 환영의 인사를 하고 있다. 스푸트니크·AP =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9일 평양 방문은 성대하게 진행됐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대규모 군중들이 나와 그를 태운 차량에 꽃다발을 흔들었고, 환영행사에서 군중들은 러시아 국기 색깔에 맞춰 옷을 입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계획보다 늦게 도착하면서 당일치기가 된 그의 북한 방문 시간은 24시간이 되지 못했다.

타스통신·스푸트니크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전 2시45분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당초 그는 전날 저녁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계획보다 늦어지면서 1박2일 일정은 ‘당일치기’가 됐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러시아 극동 사하(아쿠티아)공화국 야쿠츠크 일정을 마치고 전용기 편으로 평양으로 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어둠이 짙은 새벽, 활주로에 깔린 카펫 위에서 푸틴 대통령을 기다렸다. 비행기에서 내린 푸틴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악수와 가벼운 포옹를 나눴다. 푸틴 대통령은 한복을 입은 북한 여성이 건네준 꽃다발을 받고 북한 육해공군 의장대를 지나갔다.

두 정상은 카펫 끝에 놓인 차량에 함께 타고 이동했다. 푸틴 대통령은 ‘아우루스’ 뒷좌석 오른쪽에, 김 위원장은 왼편에 탑승했다. 아우루스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 2월 김 위원장에게 선물한 러시아산 최고급 리무진이다. 차량은 공항을 빠져나와 숙소인 금수산 영빈관을 향했다. 20여대의 오토바이가 호위했다.

공항에서 대규모 환영식은 없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등 당·군·정 주요 간부는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 2019년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문 때처럼 대규모 군중과 예포 발사도 없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과거 시진핑 주석 환영행사에 준해 북한이 준비했을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의 도착시간이 새벽으로 늦어지면서 환영행사를 간소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해외정상과 만남에서 ‘지각’으로 유명하다. 그는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과 만남에서 1시간10분을, 2018년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회담에서 2시간30분 등을 늦었다. 2019년 9월 김 위원장과 러시아에서 만났을 때 30분 일찍 나온 것은 드문 일이었다.

북한을 국빈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19일 평양시 김일성 광장에서 환영식이 열리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행사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평양 AFP=연합뉴스

공식 환영식은 성대했다. 이날 낮 12시쯤 푸틴 대통령을 태운 차량이 평양 김일성 광장에 들어섰다. 수만명의 주민들은 차량이 지나는 도로 옆에 서서 꽃다발과 러시아·북한 국기를 흔들며 환호를 질렀다. 광장 건물에는 양국 국기가, 단상에는 두 정상의 초상화가 걸렸다. 애드벌룬에는 ‘조로(북·러) 친선’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달렸다. 김일성 광장은 7만5000㎡ 규모로 10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북한의 주요 기념식이 열리는 장소다.

광장에는 김 위원장이 먼저 나와 기다렸다. 양국 국가가 연주되고, 예포 발사와 의장대 행진이 이어졌다. 주민들은 러시아 국기 색깔에 맞춰 흰색·파란색·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꽃다발과 양국 국기를 흔들었다. 축하용 풍선이 하늘을 날았다. 두 정상이 탄 무개차(지붕이 열리는 차량)가 광장을 돌자 주민들은 “조로(북러) 친선”, “푸틴 환영”, “친선 단결” 등을 외쳤다. 이날 평양의 낮 온도는 30.7도였다.

19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푸틴 러시아 대통령 공식 환영행사에서 주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스푸트니크·AP=연합뉴스

양국 정상은 이날 오후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확대·단독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장 테이블에는 러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빨강·파랑·흰색의 꽃이 길게 장식돼 있었다. 확대 정상회담에는 양측 주요 정부 인사들이 배석했다. 러시아 측에서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 데니스 만투로프 제1부총리, 알렉산드르 노바크 에너지 담당 부총리,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 담당 보좌관,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 유리 보리소프 로스코스모스(연방우주공사) 사장 등 13명이 배석했다. 북한 쪽은 김덕훈 총리, 최선희 외무상, 박정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조용원 노동당 조직비서,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장, 임천일 외무성 부상(차관) 등이 6명이 김 위원장 옆으로 자리했다.

정상 회담이 끝난 뒤에는 푸틴 대통령이 자신이 선물한 아우르스 차량의 운전석에 앉고, 보조석에 김 위원장을 태운 채로 회담장 주변을 잠깐 돌았다. 이후 양국 정상은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소련군을 추모하는 해방탑을 찾아, 푸틴 대통령이 헌화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방문 당시에도 이곳에서 헌화를 했다.

푸틴 대통령은 아우루스 차량 한 대와 차(茶) 세트, 한 해군 장성의 단검을 선물했다고 크렘린궁 측이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아우루스 차량을 선물한 것은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다. 김 위원장은 다양한 예술품을 선물로 줬다.

이날 푸틴 대통령은 2000년 방문했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지 않았다. 금수산 궁전은 김일성·김정일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북한은 이곳을 ‘주체의 최고 성지’로 여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이곳 방문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최근 김 위원장은 선대의 후광에서 벗어나 ‘1인 체제’를 세우려는 노력을 지속해왔다”며 “금수산 궁전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이번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려는 의도와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곽희양 기자 huiy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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