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는 ‘정론직필’ 이제는 ‘기레기’…정치가 언론을 소비하는 방법
李 ‘사법리스크’ 의혹 보도에는 “검찰의 애완견” “기레기” 맹비난
정치권, 언론 ‘워치독’ 역할 강조하면서 ‘의혹보도’에는 ‘고발 대응’ 多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언론이 검찰 애완견처럼…" '사법리스크' 앞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일성이 정치권 진앙이 된 모양새다. 이 대표를 위시한 야권이 검찰과 사법부, 나아가 언론까지 비판하고 나서자 여권은 '언론 탄압' '이재명 방탄'이라며 반발하는 양상이다. 이 대표가 뒤늦게 유감을 표했지만 언론단체가 사과를 요구하며 파장은 계속되는 모습이다.
언론을 사이에 둔 정치권의 공방전은 비단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언론이 쏘는 화살의 방향에 따라 여야는 공수(攻守)를 바꿔가며 언론 자유를 강조하기도, 언론 개혁을 부르짖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선 언론의 자성과 별개로 정치가 '좋은 언론'을 정의하고, '기레기'(기자+쓰레기)라 멸칭하는 '가늠자' 자체가 정략적이란 시각도 있다.
尹 언론관 때렸던 李, 사법리스크 앞 '맹폭'
언론관을 둔 여야의 공방전은 선거 때만 되면 불거졌다. 언론이 각 진영, 각 후보를 향해 검증의 잣대를 들이대고 의혹을 제기하면 정치권은 으레 '가짜뉴스'를 말했다. 뒤이어 '고발'과 '언론의 해악'을 주장하면, 기사의 '수혜'를 보는 측은 '언론의 자유'로 맞불을 놓는 양상을 보였다.
지난 대선 여야의 후보였던 이재명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은 서로를 향한 '가짜뉴스' 공방전을 주고받았다. 2021년 9월 국민의힘 경선 후보였던 윤 대통령은 이른바 '고발 사주'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를 겨냥해 "인터넷 매체·재소자·국회의원 면책특권 뒤에 숨지 말고 국민이 다 아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사람을 통해 문제를 제기해줬으면 좋겠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주장에 야권은 '편향된 언론관'을 지적했다. "언론에 대해 매우 잘못된 인식과 상식을 가지고 있다"(김남국 민주당 의원), "독재자 전두환이 말하던 '건전 언론 육성'을 통한 '언론사 통폐합'의 악취가 진동한다"(김성회 열린민주당 대변인), "메시지로 반박을 못 하니 메신저를 공격하자는 뻔한 수작"(이경 이재명 대선캠프 대변인) 등의 비판이 이어졌다. 언론이라는 '메신저'를 공격하는 대신 언론이 제기하는 '메시지'를 논리로서 반박해야 한다는 게 이재명 캠프의 비판 지점이 됐다.
그러나 당시 이재명 캠프는 자당을 향한 '대장동 특혜 개발' 의혹 등을 주요 언론사들이 연이어 보도하기 시작하자, 언론을 향해 들었던 '방패'를 내리고 '나쁜 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언론이 유독 윤 대통령이 아닌 자신을 겨냥한 의혹 제기에 더 열을 올린다 주장하면서다. 2021년 11월14일 이재명 대선 후보는 거창군청 앞 유세에서 "다른 쪽은 엄청나게 문제있어도 노코멘트 나몰라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기울어진 운동장, 나쁜 언론환경을 이겨낼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작은 실천을 여러 곳에서 하면 큰 변화가 온다"고 호소했다.
이후 대선은 윤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다. 당선증을 거머쥔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을 약속하고 언론과의 활발한 소통을 약속했으나, 이내 특정 언론과의 갈등 끝 도어스테핑은 중단됐다. 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앞두고 MBC 취재진을 전용기에 태우지 않겠다고 통보하자, 이재명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유치하고 졸렬하다"고 힐난했다.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국익을 운운하며 언론사를 탄압한다"(정청래 최고위원), "국민의 알 권리를 취재하는게 기자"(고민정 최고위원), "쩨쩨하고 치졸한 언론 탄압"(박찬대 최고위원)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나아가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누가 봐도 가짜뉴스, 순 진짜 가짜뉴스는 단속하는 것이 맞다"며 관련 규제를 추진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반발했다. 당시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순 진짜 가짜뉴스가 어딨냐"며 언론 자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공수는 금세 교대됐다. 이 대표가 6월14일 이른바 '대북송금' 논란에 검찰과 사법부, 나아가 언론의 '편향성'을 주장하면서 "언론이 검찰의 '애완견'처럼"이라는 수위 높은 비판을 내놓은 게 진앙이 됐다. 강성 친명(親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양문석 민주당 의원도 6월15일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커뮤니티에 "검찰의 애완견이라는 표현은 애완견에 대한 모독이다. 앞으로 그냥 기레기라고 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을 보탰다.
이른바 '워치독'(감시견‧watchdog)의 역할을 못하는 일부 언론을 비판한 것이란 게 이 대표와 야당의 주장이다. 그러나 거야(巨野)가 사법부의 판결까지 뒤틀면서 언론을 비판하는 것은 삼권분립 훼손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특히 대선 당시 '메시지 대신 메신저를 공격하는 행태'를 비판했던 야권이 메신저인 언론을 비하하며 대응했다는 지점에서 '자가당착적 언론관'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방송기자연합회 등 3개 단체는 6월17일 공동성명을 내고 "야당 대표와 국회의원이 언론인에 대한 과도한 비하 발언으로 언론을 폄훼하고 조롱하며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언론인에 대한 과도한 망언을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불투명한 정치의 '좋은 언론' '가짜뉴스' 잣대
여야가 공개석상에서 언론을 사이에 두고 공방전을 벌이고 있지만, 입법의 영역에서는 사실상 '원 팀'으로 움직이고 있다. 실제 22대 국회의 과녁은 언론의 자유 확대보다는 언론의 견제, 처벌에 초점이 맞춰진 모습이다. 개원 직후 민주당이 악의적 보도에 최대 3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시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재발의한 가운데, 국민의힘에선 '네이버 유튜브 가짜뉴스 차단 의무화법'을 발의했다. 문제는 여야가 자당을 향한 의혹보도를 '악의‧가짜뉴스'로 규정하고 나아가 사법부의 판결까지 '오판'이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짜와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게 쉽지 않아졌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언론의 '워치독' 역할을 강조하는 정치권이, 정작 '감시의 대상'이 되면 고소나 고발, 제소로 대응하는 경우가 잦다는 점도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중재위가 발표한 '2023년도 언론조정중재 사례집'에 따르면, 언론조정사건 중 정치인이 낸 신청은 414건(18.6%)으로 개인이 신청한 사건(2225건) 중 가장 많았다. 반면 정치인과 공공기관장, 고위공무원을 묶은 '공인'의 조정사건 피해 구제율은 62.2%로 일반인(75.7%)보다 낮았다. 실제 피해를 입증하는 것과 관계없이 피해를 호소하는 정치인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김언경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소장은 "언론이 잘못된 보도를 했을 때 그 피해에 상응하는 조치는 필요하다"면서도 "가짜뉴스 규제,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은 양날의 검이다. '나에게 불리한 정보면 다 가짜뉴스'라고 보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언론이 정치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하기 어려워질 것이기에 치열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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