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달새 553조원 불어난 美 정부 적자···'빚의 소용돌이' 빠져드나
2월 1조5070억→6월 1조9150억 달러로 상향
학자금 보조금·이스라엘 지원금 증가 등 영향
“GDP대비 이자, 10년 간 기존 최고치 초과”
미국 정부가 앞으로 10년간 역사상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의 적자 비율을 매년 이어갈 것이라는 의회 기구의 공식 보고서가 나왔다. 세입은 줄어드는 반면 의료에서 안보에 이르기까지 예산지출은 급증하면서 미국의 재정적자 부담은 올해 초 전망보다 더욱 악화하는 양상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18일(현지 시간) 발간한 ‘2024~2034 예산 및 경제 전망 보고서’ 개정본에서 미국의 정부 적자가 지난해 1조 6940억 달러에서 올해 1조 9150억 달러로 13% 늘어날 것으로 봤다. CBO는 앞서 2월 보고서에서 올해 적자가 1조 5070억 달러로 지난해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약 4개월 만에 연간 적자 전망이 약 4000억 달러(약 553조 원, 27.9%) 더 늘어난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적자 비율도 올해 5.4%로 지난해(6.3%)보다 개선될 것으로 예측했지만 개정본에서는 6.7%로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시행한 각종 정책으로 예산지출이 증가한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학자금대출 부담 경감 정책에 따라 보조금 비용 개정 등으로 관련 지출 예상치가 1450억 달러 늘어난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은행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집행한 지원금의 회수가 늦어지면서 관련 지출도 700억 달러 확대될 것으로 관측됐다.
특히 4월 의회를 통과한 총 950억 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이스라엘·대만 지원법이 미국의 장기 적자 확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립 스와겔 CBO 국장은 “법안에 따르면 자금 지원은 앞으로도 계속돼 2034년까지 지출을 9000억 달러 늘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BO의 이번 개정본에서 2025~3034년 누적 적자(총 22조 1000억 달러)는 2월 당시 전망보다 2조 1000억 달러 늘어났는데 상승분의 약 절반이 우크라이나 지원 등에 대한 영향인 셈이다.
적자가 확대되면서 이자 부담도 늘고 있다. 미국의 예산 중 이자비용은 올해 8920억 달러로 처음으로 국방 예산을 넘어서게 된다. 10년 뒤 이자 지출은 1조 7000억 달러에 이르게 된다.CBO는 “데이터가 시작된 1940년 이래 이자비용이 GDP의 3.2%를 넘은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2025년부터는 10년간 매년 이를 초과하게 된다”며 “총적자부터 이자비용까지 모두 역사적 수준”이라고 밝혔다.
세수가 늘지 않는 한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해 적자를 메워야 한다. 국채 공급량이 늘면 이자율이 오른다. 이는 다시 정부의 이자비용을 늘리는 ‘빚의 소용돌이(debt spiral)’로 빠져들 수 있다.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올해 초 “미국의 빚의 소용돌이는 곧 죽음의 소용돌이”라면서 “부채 문제는 예상 가능한 위험”이라며 강한 어조로 경고했다.
미국 적자가 더욱 불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번 추산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시행한 소득세 등 감세 정책이 예정대로 2025년 만료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면 이를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CBO는 지난달 별도의 보고서를 통해 감세안 연장 시 2034년까지 적자가 4조 6000억 달러 더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백악관은 이날 CBO의 발표 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공약에 대한 맹공에 나섰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CBO 보고서는 의회가 빚을 5조 달러 더 늘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계획이 아니라 바이든 정부의 예산안을 지지해야 한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화당 하원의원이자 예산위원회 위원장인 조디 애링턴은 “의회는 지출안과 각종 행정 조치를 취소해 바이든 행정부가 행하는 지출의 저주를 되돌려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한편 CBO는 이날 보고서에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지난해 3.1%에서 올해 2.0%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월 전망인 1.5%보다 상향 조정된 것이다. 아울러 이민자의 유입이 10년간 미국 GDP를 8조 9000억 달러 높일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으면서 이민정책을 둘러싼 양당의 정책 갈등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CBO의 10년 단위 예산 및 경제 전망 보고서는 미국 의회의 정책 수립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1~2월에 발행되는 연례 보고서다. 6~8월에는 개정본이 발간된다. 이 보고서는 미국 내 싱크탱크와 월가 투자은행(IB)들이 미국 경제를 분석하는 기본 전망으로 활용된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o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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