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의 시선으로 본 중산층의 불안과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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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이 들이닥친 뉴욕 맨해튼의 다운타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빗줄기가 창문을 넘어 바닥을 적셨지만 이방인인 '나'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딱히 없다.
'나'는 근근이 소설을 쓰는 작가로, 피터는 유대계 대형 로펌을 다니다 자기 회사를 창업한, 뉴욕 최고위 부유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문지혁 작가의 단편소설 '허리케인 나이트'는 이처럼 '중산층이 초고위 부유층에 느끼는 박탈감과 불안감'을 예리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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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케인이 들이닥친 밤
부유한 친구집에 피신해
상대적 박탈감 깊게 느껴
◆ 이효석 문학상 ◆
허리케인이 들이닥친 뉴욕 맨해튼의 다운타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빗줄기가 창문을 넘어 바닥을 적셨지만 이방인인 '나'는 도움을 요청할 곳이 딱히 없다. 그나마 전화할 만한 사람은 인근에 거주하는 외고 동창 피터뿐이다.
같은 고교를 나왔지만 둘의 삶은 오래전에, 아니 태어날 때부터 갈렸다. '나'는 근근이 소설을 쓰는 작가로, 피터는 유대계 대형 로펌을 다니다 자기 회사를 창업한, 뉴욕 최고위 부유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피터의 차를 타고 피터의 자택으로 '피신'했더니 그곳은 거대한 럭셔리 콘도미니엄이었다. 속된 말로 '여신급' 미모를 가진 피터의 아내가 '나'를 반겼다. 저녁 식사는 랍스터.
피터는 고교 시절부터 '나'와 달랐다. 대치동 출신이던 피터는 차고 다니던 롤렉스 시계를 잃어버리고도 별로 실망하지 않았다. 조금 허탈하게 웃을 뿐이다. 그 녀석은, 성격과 인품까지 좋다. 모든 사람들에게 온화한 성격이니 그야말로 멋진 친구였다.
'나'는 피터의 아내에게 묻는다. "좋은 사람이죠, 피터는?" 그녀는 답했다. "좋은 사람이죠. 나빠질 기회를 얻지 못했던 사람이기도 하고요."
'나'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말했다. "우리 정도면 괜찮은 거야." 그러나 '나'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괜찮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사는 곳은 산꼭대기 달동네. 외고 스쿨버스 15대는 '나'의 동네를 지나가지 않았다. 리바이스 청바지 하나를 얻기 위해선 어머니를 향해 '투쟁'까지 감행해야 했다. "위를 보면 끝도 없다"는 부모님 말씀과 달리, 삶은 늘 바닥이었다고 느꼈다.
올해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문지혁 작가의 단편소설 '허리케인 나이트'는 이처럼 '중산층이 초고위 부유층에 느끼는 박탈감과 불안감'을 예리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3040세대가 느끼는 계층적 불안감'이 문장 저변에 도도히 흐른다.
외고 출신에 뉴욕까지 왔으니 '나' 역시 남들 보기엔 부러움을 살 만한 삶이었지만, '나'의 눈에는 너무나 많은 '피터'가 세상에 존재한다. 태어날 때부터 좋았던 사람, 좋기만 했던 사람, 좋을 수밖에 없었던 그런 얼굴들. 피터 아내 말처럼 '나빠질 기회가 없었던' 그런 사람들.
'나'는 허리케인이 부는 그날 밤, 피터의 콘도미니엄에서 '피터가 롤렉스를 잃어버린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잃어버린다는 건 다시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중략) 그가 롤렉스를 잃어버렸다는 건 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한때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으로부터 '코치 시계'를 선물받았던 '나'는 코치 시계와 롤렉스 시계의 차이를 서서히 발견한다.
심사위원 이지은 문학평론가는 "소설 속 '나' 역시 상대적인 고학력자인데 지식인이다 보니 그런 티를 대놓고 내지 못한다. 훔쳤지만 훔칠 수가 없는 것들에 대해 뚜렷하게 말하는 소설"이라고, 편혜영 소설가는 "예전의 계층 문제가 '나이키와 나이스'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코치와 롤렉스'의 싸움이다. 외고 졸업생 중산층의 결핍감을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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