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무장애숲길 8곳 중 5곳은 휠체어로 못 간다, 장애인 위한 안내는 전무

김기범 기자 2024. 6. 1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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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무장애숲길에서 풀씨행동연구소의 시민모니터링에 참여한 이들이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할 수 없는 구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풀씨행동연구소 제공.

보행 약자를 배려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무장애숲길 8곳 중 5곳은 정작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지적이 나왔다. 장애인을 위한 정보는 8곳 모두에 제대로 안내돼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풀씨행동연구소는 관악산, 불암산, 아차산, 대모산, 능골산, 봉산, 안산, 북한산 등 총 8곳의 서울 시내 무장애숲길을 시민들과 함께 모니터링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19일 밝혔다. 풀씨행동연구소가 지난달 진행한 ‘지속가능한 도시숲을 위한 무장애숲길 시민모니터링 프로젝트’에는 교통약자의 이동권 확대 필요성과 무장애숲길 조성으로 인한 산림 생태계 훼손 우려에 공감하는 시민 11명이 참여했다.

연구소가 살펴본 8곳 중 아차산, 능골산, 봉산, 안산, 북한산 등 5곳은 공원 입구까지의 경사가 심하거나 계단이 있어서 휠체어 접근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불암산, 능골산, 봉산, 안산 등 4곳은 차도와 분리된 보행자 접근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무장애숲길은 장애인 및 노약자 등 보행약자들도 부담 없이 산림을 즐길 수 있도록 전 구간의 경사도를 8% 미만으로 조성한 나무 덱형 숲길을 말한다. 완만한 경사로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숲을 일부 훼손했음에도 정작 장애인은 이용하기 어려운 숲길이 조성된 것이다.

서울의 한 무장애숲길에서 풀씨행동연구소의 시민모니터링에 참여한 시민들이 휠체어 이용자가 보기 어려운 안내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풀씨행동연구소 제공.

연구소는 시민모니터링 결과 8곳 모두 안내판에 탐방로 경사도·난이도·장애인 화장실·휠체어 선회가능위치 등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탐방로에 대한 점자·음성 안내도 없었다. 장애인들이 힘겹게 높은 경사를 지나거나 계단을 올라 탐방로에 방문해도 탐방로에 대한 기본 정보조차 얻을 수 없는 셈이다.

식생 훼손과 관련해서는 노선 안팎에서 벌목과 가지치기가 실시된 모습이 다수 발견됐고, 토양 훼손으로 인한 나무 뿌리 노출 5곳, 과도한 숲길 분기점으로 인한 훼손이 4곳 확인됐다.

연구소는 장애인 이용과 식생 훼손 두 가지 측면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지역은 은평구 봉산으로, 숲길 입구까지 차도와 분리된 보행자 접근로가 없고, 경사가 심한 편이었다고 설명했다. 울퉁불퉁한 야자매트가 깔려있는 곳도 있어 휠체어가 지날 수 없는 환경이었다. 봉산은 비탈면의 토양 흘러내림이나 난간에 끼인 나무, 벌목된 나무 등이 산재한 상태였고, 전체 숲길을 따라 끈끈이트랩이 설치되는 등 훼손 상태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에서는 2009년 안산 자락길을 시작으로 2023년 상반기까지 총 39곳(67.6㎞)의 무장애숲길이 조성됐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무장애숲길을 조성하면서 지나친 산림 훼손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휠체어 이용자들이 지나기 힘든 서울 관악산 무장애숲길 접근로의 배수구 덮개.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제공.

시민 참가자로서 아차산 모니터링에 참여한 조주연씨는 “모니터링 전에는 모두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장애인을 제외한 이들에게만 편한 길이었다”며 “경사도만 평탄하게 낮췄을 뿐 다양한 교통약자에게 필요한 정보나 동선이 충분히 고려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본인도 휠체어 이용 당사자로서 모니터링 과정에 참여한 전윤선 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숲을 훼손하기보다 일부 구간은 경사가 조금 있더라도 기존 길을 평탄화해 활용하면 된다”며 “정보접근성을 개선하고, 휠체어 이용자에 위험한 단차를 없애는 세심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윤주 연구소 캠페이너는 “교통약자의 접근성을 고려하는 동시에 과도한 생태 훼손이 일어나지 않는 무장애숲길 설치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서울의 조성된 무장애숲길 39곳 중 배리어프리 인증과 예비인증을 받은 평지형 공원은 19곳에 불과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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