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물가 내렸다" vs 서민 "올랐다" 그 이유는?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4. 6. 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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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상승률과 물가 수준 다르지만
일반 소비자 주요 관심사 구매력
물가상승만큼 임금 증가 중요해
우리 실질임금 2년 연속 감소
물가상승률 밑도는 임금상승률

지금 물가는 내렸을까 올랐을까. 경제학자나 공무원·정치인은 현재 물가가 많이 내려왔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 말에 동의하지 못하는 서민들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 이런 간극이 생기는 걸까.

식당보다 가격이 저렴한 인근 대형마트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찾는 발길이 많아지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간편식 코너 모습. [사진=뉴시스]

A라는 과자 가격이 몇년간 매월 5%씩 올랐는데, 올해부터는 달마다 2%씩 오르고 있다고 치자. 경제학자와 일반 소비자는 이를 어떻게 표현할까. 경제학자들은 물가 상승 속도가 완화했다고 말하겠지만, 소비자들은 과자 가격이 몇년 전보다 몇배 올랐다고 생각한다.

한국은행이 18일 공개한 '우리나라 물가 수준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는 소비자와 경제학자의 인식 차이를 잘 보여준다. 보고서는 "최근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으나, 누적된 물가 상승으로 물가 수준이 크게 오른 상태"라고 밝혔다. 여기서 말하는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률이고, '물가 수준'은 그 결과로 책정된 현재 물건의 가격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이렇게 정리했다. "물가상승률과 물가 수준의 차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중앙은행은 물가상승률을 목표로 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주장한 건 물가 수준(price level)이다. 물가상승률은 통화정책으로 대응하지만, 높은 생활비가 지속되는 등의 문제는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 쉽게 얘기하면, 지금 우리나라 제품 가격이 비싼 것은 통화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현실(구조)이 그렇다는 얘기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은의 보고서로 눈을 다시 돌려보자.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 수준은 얼마나 높을까.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리서치 조직인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가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별 주요 도시의 물가를 비교해 본 결과, 우리나라 서울시의 의식주 물가는 OECD 평균(100)보다 55.0% 높았다. 구체적으로 서울의 의류·신발 가격은 OECD 평균치보다 61.0%, 식료품과 주거비는 각각 56.0%, 23.0% 더 비쌌다.

스테파니 스탄체바 하버드대학 교수는 올해 3월 발표한 '왜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싫어하는가'라는 논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 지표 발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슈퍼마켓이나 주유소의 가격표를 본다"며 "그래서 대통령이나 경제 부처의 주장이 맞지 않고, 심지어 정직하지 않다고 간주한다"고 주장했다. 스탄체바 교수는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혐오하는 건 그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는 것처럼 보여 구매력이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이 그 물건을 구입할 여력이 있는지다. 그래서 고물가 시기에는 '가격 수준'만큼 '임금 수준'도 무척 중요하다. 가격이 비싸도, 임금이 올라서 그 물건을 살 수 있다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고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최근 임금 수준은 어떨까. 물가 수준을 반영한 우리나라의 실질임금은 2022년 전년보다 0.2% 줄었다(3592만원). 통계 기준을 바꾼 2012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다.

2023년에는 전년보다 1.1%나 줄면서 처음으로 실질임금이 2년 연속 감소했다. 물가상승률은 2022년 5.1%에서 2023년 3.6%로 상승폭이 줄었는데, 임금상승률이 이보다 더 쪼그라들었다는 얘기다. 임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최저임금도 2023년 5.0% 오르고, 2024년에는 2.5% 인상에 그치면서 2년 연속 물가상승률을 밑돌았다.

중앙은행이 물가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보다 임금 수준을 목표(income-level targeting)로 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중앙은행이 대안적인 방법으로 소비자의 명목 소득 수준을 목표치로 정해서 소득 기대를 높여주면, 통화정책을 나쁜 소식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작아진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공무원노조가 6월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공무원 임금투쟁 선포 결의대회를 열고 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사진=뉴시스]

물론 통화정책의 목표를 임금으로 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통화정책의 효과가 임금상승을 예상하는 사람들에게 더 잘 나타난다는 정도의 얘기다.

댈러스 연은은 1990년부터 기대인플레이션 통계를 작성한 미시간대학 자료를 인용해 "현재 경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는 일반 사람들에게 두가지 특징이 있다"고 분석했는데, 낙관론자들은 자신의 향후 소득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1년 후 물가 전망인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췄다. 물가가 낮고 임금이 늘면 구매력은 더 많이 증가한다는 거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ayhanb0903@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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