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유족의 고통에 대한 배려 찾아볼 수 없어”···법원이 극우단체 대표 꾸짖은 이유
극우단체 대표가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재판부는 소송을 낸 원고를 향해 “유족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01단독(김효연 판사)는 지난 14일 김상진 신자유연대 대표가 이태원 참사 피해자인 고 이지한씨의 부모 이종철·조미은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김 대표는 자신이 이태원 참사 유가족에게 “○○팔이 한다”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이씨 부부가 언론 등에서 그렇게 주장해 정신적 충격을 입었다며 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김 대표는 2022년 12월 서울 용산구 이태원 광장에 마련된 시민분향소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제 정치 선동꾼들 물러나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집회를 열었다. 김 대표는 집회 중 라이브 방송을 하던 중 실시간 채팅창에 ‘선택적 ○○팔이’라는 댓글이 올라오자 이 부분을 소리 내 읽으며 “맞다, 표현이 좋다”고 말했다. 신자유연대 천막을 드나들던 한 여성이 분향소 쪽을 향해 “○○팔이 한다”고 혐오발언을 이어가자 이를 들은 조미은씨가 오열하다 쓰러지기도 했다.
김 대표는 소송을 내면서 “○○팔이 한다”는 발언이 유가족이 아닌 시민대책위원회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향한 혐오발언을 통한 ‘2차 가해’도 모자라 말꼬리 잡기식 소송으로 ‘3차 가해’를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재판부는 분향소 앞에서 한 김 대표의 발언 등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의 언행에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분향소 앞 집회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했음에도 성명불상 여성의 언행을 제지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씨 부부가 언론 인터뷰 등에서 김 대표의 발언을 언급한 것은 공적인 성격이 있으며, 김 대표의 명예훼손 여지가 있을지라도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유족인 피고인들 입장에서 부당한 처우를 사회에 알리고 도움을 구하려 한 것은 위법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며 “이는 동시에 다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추모가 방해 없이 진행될 수 있기를 바라는 공익 목적 행위로서의 성격도 가진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씨 부부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경찰은 무혐의로 종결했다. 법원도 지난 1월 고소를 취하하라는 취지로 강제 조정 결정을 내렸으나 김 대표는 정식 재판을 고집했다.
사건을 대리한 양성우 변호사는 “재판부가 유족들의 아픔을 공감해 판단했다는 점에서 진취적이고 전향적인 판결”이라며 “유족을 중심에 두고 유족들의 추모 행위가 공익적인 목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철씨는 “판결은 당연한 결과”라며 “많은 일을 겪으며 국가와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는데 그래도 이런 판결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281712001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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