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는 왜 ‘걸리버 여행기’를 다시 썼나···“세계 비참하지만 희망 가져야”

정원식 기자 2024. 6. 1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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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가 19일 오전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강당에서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출협 제공

<걸리버 여행기>(1726)는 조너선 스위프트가 당대 영국 사회를 비판한 작품이다. 21세기 한국 소설가가 300년 전 영국 풍자문학의 걸작을 다시 쓴다면 어떤 이야기가 될까.

소설가 김연수는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을 앞두고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로부터 <걸리버 여행기>를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작가는 <걸리버 여행기>를 국내에 최초로 소개한 육당 최남선이 1909년 잡지 ‘소년’에 실은 ‘거인국 표류기’를 현대적 문체로 다듬은 뒤, 육당의 원고에서는 제외된 <걸리버 여행기>의 3부(라퓨타)와 4부(후이늠)를 다시 썼다.

이렇게 탄생한 <걸리버 유람기>가 오는 26~30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김연수의 <걸리버 유람기> 후반부에 홍길동이 등장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작가는 원작에서 걸리버가 라퓨타를 방문한 뒤 일본 나가사키에서 네덜란드 상선을 타고 유럽으로 돌아간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19일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럽 판본 중에는 이때 상선이 지나가는 바다를 ‘Sea of Corea’라고 표시한 책도 있다”면서 “이 바다는 일본의 서쪽이자 제주도 남쪽 바다로 <홍길동전>에선 이상사회 율도국이 있는 곳으로 나온다. 자연스럽게 걸리버와 홍길동이 만난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걸리버 유람기>의 주제 의식은 4부에 집중돼 있다. 걸리버는 4부에서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말들이 지배하는 나라 ‘후이늠’을 방문한다. 이곳에서 인간은 ‘야후’라 불리며 멸시받는 야만적 존재다. 원작에서 걸리버는 야후의 야만성에 절망한다.

작가는 그러나 역설적으로 희망을 말한다. “책은 지금 우리가 인간에게 절망하는 것보다 스위프트가 훨씬 더 깊이 절망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에서 역설적으로 희망이 싹틉니다. 오래 전에 마땅히 멸망했을 인간 사회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고전들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죠.”

<걸리버 유람기>에서 홍길동은 걸리버에게 오늘의 세계가 비참하더라도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존재로 등장한다.

‘후이늠’은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다. 주일우 서울국제도서전 대표는 “기후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 전쟁 같은 비참한 상황이 일회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걸리버 여행기>의 네 번째 나라 ‘후이늠’을 도서전 주제로 삼게 됐다”고 말했다.

올해 66회를 맞이한 서울국제도서전에는 총 19개국에서 출판사 및 출판 관련 단체 452개(국내 330개사, 해외 122개사)가 참가해 마켓 운영, 도서 전시, 강연, 사인회 등 450여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주빈국은 사우디아라비아다. 오만과 노르웨이는 주빈국 다음으로 주목받는 ‘스포트라이트 컨트리’로 참가한다.

소설가 강화길, 김금희, 김애란, 김연수, 김초엽, 은희경, 천선란, 최진영, 편혜영, 시인 김현, 나태주, 박준, 안희연, 진은영, 작가 금정연, 김원영, 김하나, 박서련, 요조 등이 독자들과 만난다.

해외에선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자인 조카 알하르티, <H마트에서 울다>를 쓴 한국계 미국 작가 미셀 자우너, <가짜 노동>으로 알려진 덴마크 인류학자 데니스 뇌르마르크, 일본 만화가 모리 카오루가 한국을 찾는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예년과 달리 정부 지원 없이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단체인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문체부 감사 결과를 토대로 2018~2022년 서울국제도서전 사업과 관련해 약 3억5900만원을 반납하라고 지난 5월 출협에 통보했다. 출협은 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윤철호 출협회장은 “올해 도서전은 회원들의 기부금, 회비, 참가사들이 낸 돈으로 치른다”며 “지금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결과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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