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177〉지방소멸 대응, 여성 중심이어야 한다
'지방'(地方)의 '방'은 모서리, 주변, 변방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다. 그러니까 지방이라는 말은 곧 중심지가 아닌 지역, 요즘말로 하면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지역이라는 의미가 된다. 일부에서는 '지역'(地域)이라는 '정치적으로 옳은'(politically correct)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지방이 지방이 아닌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지방을 이야기할 때 가장 앞서 나오는 용어가 '지방 소멸'이다. 지방에 노인인구는 급증하는데 청년인구가 급감하면서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거나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으로 바뀌면서 지방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지적한 용어다. 실제 지방에서 바라보는 현실은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정부나 지자체 모두 이런 지방 소멸 문제가 촌각을 다투는 시급한 문제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는다. 대학이 지역의 산업과 연계해 대학 및 지역의 경쟁력을 제고하여 일자리도 만들고 인구 유출도 막으라는 '지역혁신중심대학 지원체계'(RISE: 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사업이나 지방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대학으로 성장하라는 글로컬대학 사업도 있다. 또 인구소멸대응자금을 조성해 소멸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우선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정부나 지자체 사업들을 살펴보노라면 드는 궁금증이 있다. 지방소멸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게 된 계기는 일본에서 개발된 소멸위험지수라는 것을 국내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소멸위험지수는 65세 이상의 인구를 20~39세 사이의 여성 인구로 나눈 값이다. 20~39세 사이의 여성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은 이 나이대의 여성이 주로 아이를 출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래의 소멸위험지수를 해석하면 노인 인구 대비 출산 가능한 젊은 여성의 비율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이 된다. 결국 소멸의 핵심이 젊은 여성에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방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남성이 여성보다 많은 남초(男超)가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과거 남아선호사상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영향도 있고, 지방의 산업이 남성 중심으로 성장해온 탓도 있다. 실제로 지방의 산업을 보면, 금융, 법률, 인터넷, 방송, 마케팅 등의 서비스보다는 제조업, 건설 및 건축 등 여성보다는 남성 중심의 일자리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주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많은 젊은 여성이 아이도 아이이지만 자아를 실현하는 데 높은 가중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나 육아 등은 후순위인 경우가 많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지방소멸 대응 정책들을 살펴보면 본질을 많이 벗어나 있다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과연 여성의 입장에서 필요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지, 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등을 보면, 매우 회의적이다. 여성과 관련된 위원회인데 전원이 남성으로 구성돼 화제가 됐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유명하다.
지방 소멸의 문제가 제기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젊은 여성들의 수가 현저하게 부족한 데 있다. 따라서 지방의 소멸을 막는 각종 정책이나 제도의 핵심에도 그 중심에는 여성이 있어야 한다. 지방의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여성이 갈 수 있는 분야가 함께 육성돼야 하고, 지방소멸대응 관련 각종 사업도 관광객 등의 관계인구가 아닌 그 지역에서 살아갈 여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지방소멸 문제가 왜 제기됐는지 그 원인을 파악해보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도 잡힌다. 그런데 지금의 지방소멸 관련 각종 정책이나 대책은 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헛다리를 짚어도 될 만큼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소멸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볼 때다.
김윤식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yunshik@g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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