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문제아' 푸틴·김정은 손잡으니…시진핑의 불편한 속내 '왜'
중국 공산당 기관지 환구시보는 19일 새벽 이뤄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몇 시간 앞두고 중국 분석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모스크바(러시아)와 북한이 더 가까워지는 것은 미국이 주도하는 동맹에 대항하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환영한다는 거다. 과연 진심일까.
푸틴 대통령이 방중해 시 주석을 만난 5월 16일, 베이징엔 푸틴이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북한으로 갈 수 있다는 설이 제기됐다. WSJ(월스트리트저널) 등 서방 언론도 이 가능성을 높이 점쳤다. 국가원수가 전혀 예고 없이 다른나라를 방문하기는 어렵다는 해석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실제로 양국 간 실무준비가 일부 이뤄진 정황도 포착됐다. 적어도 이른 시일 내 북한을 방문할거라는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런데 푸틴 대통령은 그로부터 한 달 여가 지난 시점에야 북한을 찾았다. 그 새 바빴던 것도 아니다. 푸틴은 그간 벨라루스(5월 23~24)와, 우즈베키스탄(같은 달 26~28)을 찾았다. 현 시점 러시아의 동맹으로서 북한의 역할은 벨라루스나 우즈베키스탄에 비할 바 아니다. 미국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고 러시아에 직접 무기를 제공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북한이 유일하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 현지서는 복잡한 북중(조중)관계가 푸틴의 북한 답방 시점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왔다. 시 주석을 만난 푸틴이 사실상 북한과 밀착에 대한 속도조절을 부탁받았고, 푸틴이 이에 일단 응하는 제스쳐를 보이기 위해 북한 방문을 미뤘다는 거다.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 27일 진행된 한·중·일 정상회의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중국까지 포함해 비판하는 담화를 내 눈길을 끌었다. 여차하면 우방이고 뭐고 없다는 식이다. 실제 지난 4월 자오러지 중국 전인대(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장이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아 방북했을 당시에도 북한이 요구하는 식량 등 사안에 대해 중국이 거의 대부분 확답하지 않아 북한의 실망감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과 시진핑의 지난 2019년 회동을 기념하며 설치됐던 중국 다롄(대련)의 두 사람 발자국 동판이 최근 별다른 예고 없이 철거된 것으로 알려졌다. 불안한 북중관계 정황을 뒷받침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다롄 외곽지역인 방추이다오 해변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였던 전시관도 슬쩍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중관계에 대해 중국이 모종의 메시지를 전달한 거다.
경색된 북중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는 널렸다. 중국 정가에 따르면 최근 중국은 북한에서 중국으로 오는 근로자들에 대한 비자발급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으로서는 경제유지의 생명선이나 다름없는 외화벌이 창구가 크게 좁아진 셈이다. 또 일단 중국에 나가있는 근로자들을 복귀시키면 새로 비자를 못 받을테니, 지금 해외 거주중인 근로자들의 체류 기간은 기약없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중국에 살며 비교적 자유롭게 핸드폰을 소지하고 몰래 한국 드라마를 본다. 북한 입장에선 이들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 2월 중국 지린성에서 2000여명의 노동자가 북한 정권의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파업과 폭동을 일으키는, 북한 정치구조를 감안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 역시 이런 복잡한 북중관계로 인한 특수상황이 시발점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방북을 포함한 푸틴의 행보도 의미심장하다. 푸틴은 김정은을 만난 이후 곧바로 베트남으로 향한다. 베트남은 일단 중국의 우군을 자처하고 있지만 실상은 한국은 물론 미국 진영 국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중국과는 전면전만 벌어지지 않았을 뿐 심각한 영토분쟁을 벌이고 있다. 베트남이야말로 중국이 주장하는 남중국해 해상국경인 '구단선'으로 인해 필리핀과 함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다.
푸틴이 북한과 베트남을 묶어서 방문하며 조정자 역할을 자처하는건 중국 입장에선 불편하기 이를데 없는 행보다. 한 재중 소식통은 "중국 입장에선 푸틴의 전쟁에 더 깊숙이 개입할수록 미국 등 서방에 제재 빌미만 주게 된다는 점에서 골치가 아플 수밖에 없다"며 "중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방북을 강행한 것도 중국으로서는 편치 않은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19일 북러 정상회담 직전인 18일 서울에서 한중 외교안보대화(2+2회동)가 성사된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중국은 당연히 푸틴의 방북 일정을 미리 공유받았을 것이고, 북러 정상이 만나는 시점에 한중 간 고위급 외교안보 회의를 한다는건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날짜를 조정하지 않았다. 중국이 북한이나 러시아를 중심으로 하는 친중진영 재편에 견제구를 던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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