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타는 규칙, ‘선착순’이 최선인가요? [똑똑! 한국사회]

한겨레 2024. 6. 1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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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유지민 | 서울 문정고 2학년

얼마 전 학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5층에 위치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나와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주변에 여자 선생님들밖에 없어 부축받아 계단으로 내려가기도 영 무리였다. 수리기사님께 연락해 엘리베이터를 고치는 20분 동안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우리 학교는 최근 엘리베이터를 교체했다. 반년도 지나지 않아 또 문제가 생겼다. 의아해하는 선생님께 말했다. “아마 아이들이 꽉 채워서 타고 내려서 고장 난 것 같아요”라고. 선생님은 내 말을 그다지 믿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비장애인보다 수십번 더 자주 겪어봤으리라 장담하는 입장으로서, 그때의 말은 추측이 아닌 확신에 가까웠다.

공공장소 엘리베이터 고장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정원 초과 탑승’이다. 승강기에는 정원 기준 인원을 둔다. 이 기준은 처음 법이 도입될 때부터 변하지 않았지만, 매년 한국 성인 남녀의 평균 체중은 증가해왔다. 이에 2018년 행정안전부는 정원 기준을 1명당 65㎏에서 75㎏으로 강화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거나, 유아차를 끌거나,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75㎏이 훌쩍 넘는다. 늘어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엘리베이터는 자주 고장 나고, 결국 정원보다 점점 적은 수의 사람들만 태울 수 있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엘리베이터 고장은 조금만 눈여겨보면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장애인은 길거리에서 고장 난 엘리베이터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휠체어를 타는 이에게 엘리베이터 고장은 통행금지령과 다를 바 없다. 스쳐 지나가는 엘리베이터여도 고장 나 있으면 신경 쓰인다. 언젠가 난생처음 가는 곳에 지하철을 타고 간 적이 있었다.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려는데 예기치 못하게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고치던 직원은 오늘 안에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으니 다른 역을 이용하라 말했다. 하필 거센 비가 내리던 날, 전 역으로 돌아가 목적지까지 10분을 걸어야만 했다. 마치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걸을 수 없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 하나 손쓸 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덜 맞닥뜨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손쉽게 문제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우선순위대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다. 먼저 온 순서대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은 당연한 규칙처럼 여겨지지만, 때론 그렇지 않다. 계단을 오르기 귀찮고 힘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는 사람은 대체로 명백히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선착순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꼭 필요한 이들이 타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속속들이 만원인 엘리베이터 때문에 한 층 위의 장애인 화장실을 가지 못해 실례를 저지른 적 있는가.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에게 이동할 권리는 곧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직결된다. 몇년 전부터 수도권 지하철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1역 2동선도 그 연장선에 놓여 있다. 1역 2동선이란 하나의 지하철역마다 교통약자가 이용 가능한 두 가지 이상의 경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편의시설의 개수를 늘려 수요를 분산하고, 문제가 일어났을 때 꼼짝없이 발이 묶이는 일을 막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글을 쓰다 문득 ‘나는 타인에게 순서를 양보한 적이 있었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렇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솔선수범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아주 큰 전동 휠체어를 탄 분이 엘리베이터를 여러번 보내는 걸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야 그 자리에서 대신 따질 용기가 없던 게 부끄러워졌다. 또한 비장애인 사이에 껴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상대적으로 작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자의 특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위선적인 사람이 되지 않도록 꾸준히 스스로를 성찰하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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