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찾아 바다 건넌 ‘견생역전’의 주인공들이 모였다

김지숙 기자 2024. 6. 1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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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구조견 입양단체 ‘웰컴독 코리아’ 캐나다서 입양가족 행사
동물활동가 “잘 적응한 개들 모습, 한순간에 걱정 사라져”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 인근 마컴의 한 도그파크(반려견 운동장)에서 열린 웰컴독 코리아 입양가족 만남 행사에 참여한 ‘오목이’와 뎀스터 가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웰컴독 코리아 제공

쫑긋한 귀와 단밤처럼 반짝이는 코가 귀여운 누렁이 ‘오목이’는 개 농장에 팔려가 ‘복날 개고기’가 될 운명이었다. 다행히 지난해 7월 말, 경기 수원시의 한 도살장에서 죽기 직전 구조됐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1만2000㎞ 떨어진 캐나다에서 ‘제2의 견생’을 살고 있다. 뜬장에서 두려움에 떨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여느 반려견처럼, 반려인이 쓰다듬는 손길에 기뻐하고 반려인의 무릎에 누워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삶이 달라진 것은 오목이뿐이 아니다. 2019년 강원 속초·고성 산불 현장에서 구조된 ‘도치’, 1m 목줄에 묶여 있던 ‘달순이’, 열악한 환경으로 ‘개들의 지옥’이라 불렸던 민간 보호소 ‘애린원’(2019년 철거)에서 살아남은 ‘기젯’도 이젠 캐나다에서 새 가족을 만나 반려견으로서의 삶에 적응하고 있다.

구조견 국외입양단체 ‘웰컴독 코리아’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 인근 마컴의 한 도그파크(반려견 운동장)에서 입양 가족 만남 행사를 진행했다. 웰컴독 코리아 제공

이처럼 각기 다른 학대 현장에서 살아남은 오목이, 도치, 달순이, 기젯이 얼마 전 한자리에 모였다. 구조견 국외입양단체 ‘웰컴독 코리아’는 5월26일(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 인근 마컴의 한 도그파크(반려견 운동장)에서 지난 6년간 캐나다 전역으로 입양 보낸 구조견 68마리와 반려가족 185명을 초청해 입양가족 만남 행사를 열었다. 웰컴독 코리아는 동물자유연대 등 국내 동물단체와 동물구조 활동가들이 개 농장, 재난 현장 등에서 구조한 개들의 국외 입양을 주선하는 단체다. 주로 국내에서는 입양이 어려운 진도믹스 등 중대형견이나 소형 믹스견들의 캐나다 입양을 진행하고 있다. 웰컴독 코리아를 통해 해마다 300마리 이상이 캐나다의 입양 희망 가족과 연결되고 있다.

‘도치’는 지난 2019년 강원 속초·고성 산불 현장에서 구조됐다. 동물자유연대 제공

이날 행사는 구조견들의 현재 적응 상황을 공유하고, 입양 가족들끼리 교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정수 웰컴독 코리아 대표는 “입양 전 배변 훈련·사회성 훈련 등을 하고 가정 임시보호를 거치지만 트라우마를 겪은 개들이기 때문에 입양 초반에 키우는데 어려움을 겪는 입양 가족들이 있다”며 “그들에게 소통의 자리를 마련해 주고, 구조견들도 입양 간 지 5~6년 뒤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입양 가족과 행사에 참석한 ‘도치’(왼쪽). 웰컴독 코리아 제공

이날 가장 인기 있었던 행사는 반려견 20마리가 참가한 장기자랑이었다. 개들은 앉아, 엎드려, 손주기 등 간단한 훈련부터 간식 받아먹기, 다리 사이 통과하기 등의 ‘고난도 장기’를 선보였다.

달순이, 터커와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반려인 내털리 권씨는 “터커가 다른 강아지와 인사를 하거나 친하게 지내지 않는데 오늘은 다른 강아지들과 잘 놀고 있다”며 “아이들이 행복한 모습을 볼 때면 개가 내 인생을 바꿨고, 개들의 인생도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터커’는 2019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의 한 개 농장에서 구조됐다.

구조견 국외입양단체 ‘웰컴독 코리아’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캐나다 토론토 인근 마컴의 한 도그파크(반려견 운동장)에서 입양가족 만남 행사를 진행했다. 웰컴독 코리아 제공

개들의 구조·돌봄에 참여했던 동물자유연대 활동가 4명도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송영인 동물자유연대 홍보캠페인팀 선임활동가는 “개들을 다시 만난 게 정말 꿈같다”며 “(한국에서) 14시간이나 비행기를 태워 보내야만 했을 때는 늘 마음 한편이 무거웠는데, 입양 가족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가수 이효리씨가 자신이 임시보호하다 국외로 입양 보낸 구조견들을 다시 찾아갔는데 개들이 이씨를 알아보는 장면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날 행사에 온 구조견들은 어땠을까. 이정수 대표는 “오랜 기간 임시보호한 아이를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처음에는 예의상 꼬리를 흔들었다. 몇 시간이 지나니까 그제야 ‘아, 너였구나!’ 하듯이 ‘끙끙’ 소리를 내면서 진심으로 반겨줬다.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픔을 겪은 개들에게 새 삶에 적응할 시간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약속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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