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100년의 저항을 잇다

박송이 기자 2024. 6. 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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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잇다 시리즈 ‘천사가 날 대신해’. 작가정신 제공

“조선아(…)/이 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보아라./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 소설가 김명순(1896~1951)은 그의 시 ‘유언’에서 폭력적인 가부장제와 여성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조선사회를 향해 절규한다. 한국 최초로 현상문예에 당선된 김명순은 기자, 평론가, 번역가 등 전방위적으로 활동한 작가였다. 그러나 당시 문단의 남성들은 김명순을 부정한 여성으로 규정하며 비난과 공격을 일삼았다. 김기진 평론가는 1924년 잡지 <신여성>에서 김명순 작가의 작품을 두고 “피부로 치면 육욕에 거친, 윤택하지 못한…퇴폐하고 황량한 피부”라며 폭력적인 비평을 퍼부었다. ‘유언’은 김명순의 절망과 환멸을 보여주지만, ‘이 다음에 나같은 사람이 나더라도’라는 구절은 절망 속에서도 성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이 그 다음 세대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시리즈는 근대 여성 작가를 한 명씩 선정한 뒤 현대 여성 작가가 이들 소설을 잇는 작품을 써 한 권의 책에 담는 프로젝트다. 최근 출간된 다섯 번째 책 <천사가 날 대신해>는 근대 여성 문학의 맨 앞에 놓이는 이름 김명순 작가와 장편 <미스 플라이트> 소설집 <바비의 분위기> 등에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여성혐오를 탐구해온 박민정 작가가 짝을 이뤘다. 김명순 작가의 작품으로는 학대받는 여성의 삶을 묘사한 ‘의심의 소녀’ 가부장제 모순을 고발한 ‘돌아다볼 때’ 사랑과 이상의 관계를 조명한 ‘외로운 사람들’이 수록됐다. 박민정 작가는 이들 작품에 영감을 받아,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혐오’를 현대의 시각으로 풀어낸 ‘천사가 날 대신해’를 썼다. 박민정 작가는 이번 작업의 소회를 담은 에세이에서 “‘의심의 소녀’를 의식해 작품을 썼다”고 밝히며 “지금까지 써온 자신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아이 역시 바로 이 ‘의심의 소녀’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라고 말했다.

시리즈를 기획한 황민지 편집자는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 김명순이 데뷔한 지 한 세기가 지났으나, 근대에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간 여성 작가의 작품들은 충분히 읽히거나 기록되지 못했다”라며 “또 오늘날 현대 여성 작가가 어떻게 저마다 길을 내어 그 흐름을 이어나가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이전에도 근대 여성 문학이 전집 혹은 중·단편집으로 간간이 소개되어 오고는 했으나, 좀 더 대중적이면서도 지금의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고 기획의도를 밝혔다.

이후 시리즈는 ‘박화성과 박서련 작가’ ‘강경애와 한유주 작가’ ‘나혜석과 백수린 작가’를 연결한 작품집을 계속 선보일 예정이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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