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의 포식이 시작되자 은하가 빛을 찾았다

유럽남방천문대(ESO) 연구진
가스 고갈된 ‘휴면 은하’서 활동은하핵 형성 관측

지구에서 약 3억 광년 떨어진 은하 'SDSS1335+0728'의 상상도. 이 은하는 가스 고갈로 어두웠으나 중심에 있는 블랙홀에 다시 가스 공급이 시작되며 다시 강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유럽남방천문대(ESO)

천문학자들이 수명을 다해 빛을 잃은 은하가 밝기를 회복하는 이유를 찾아냈다.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에 가스 공급이 시작되며 강한 빛을 방출한다는 것이다. 다만 블랙홀을 깨운 가스의 출처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유럽남방천문대(ESO) 연구진은 18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에 블랙홀이 주변 가스를 삼키며 활동은하핵(AGN)으로 변하는 현상을 관측했다고 밝혔다.

활동은하핵은 모든 은하의 약 10%에만 존재하는 영역이다. 일반적인 은하보다 밝은 빛을 내는 은하에서 발견되며 전파와 마이크로파·적외선·가시광선 같은 다양한 파장의 빛을 강하게 방출한다. 빛을 낸 것은 블랙홀 주변의 강착원반으로 알려져 있다. 강착원반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물질들이 주변에서 압축된 상태를 말한다. 다만 활동은하핵의 밝기는 1만년에서 1000만년 주기로 변하는 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천문학자들도 알지 못하고 있다.

연구진은 활동은하핵의 밝기 변화 원인을 찾기 위해 지난 수십년 간 수십된 은하 관측 데이터 240만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은하의 가스가 고갈돼 더 이상 별을 만들 수 없는 ‘휴면 은하(Quiescent Galaxies)’ 중 86개에서 활동은하핵이 만들어지며 밝아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은하에서 가스가 고갈되면 활동은하핵도 만들어지지 못해 밝기가 어두워진다. 그런 은하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 밝아진 것이다.

연구진은 휴면은하였다가 활동은하핵이 만들어진 은하 중 18개를 선정해 칠레에 있는 남방천체물리학연구(SOAR) 망원경으로 관측했다. 그 결과 지구에서 약 3억 광년(光年·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떨어진 은하 ‘SDSS1335+0728′에서 밝기가 변하는 과정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총 6개의 망원경을 사용해 X선부터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을 비롯해 다양한 파장의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다. 그 결과 은하 중심에 있는 거대 블랙홀이 활동을 다시 시작하며 활동은하핵이 만들어지고, 은하의 밝기가 급속도로 밝아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활동은하핵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관측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블랙홀이 활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던 이유는 추가 연구로 밝혀야 한다. 일반적으로 블랙홀에 가스가 다시 공급되는 현상은 ‘조석 붕괴 현상(TDE)’이 꼽힌다. 조석 붕괴 현상은 강한 중력으로 인근 물체가 부서지는 과정을 말한다. 이러면 블랙홀에 가스가 공급돼 ‘블랙홀의 식사’라고도 불린다. 다만 조석 붕괴 현상은 1년 이상 지속되지 못해 장기간의 활동은하핵 형성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머지않아 활동은하핵의 형성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활동은하핵은 은하의 진화에 중요한 요소로,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대한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파울라 산체스 사에즈 ESO 연구원은 “이전까지는 블랙홀이 활성화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다”며 “머지 않아 은하의 가스가 핵으로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Astronomy & Astrophysics(2024), DOI: https://doi.org/10.1051/0004-6361/202347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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