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만 하는 줄 알았던 블록딜 투자, 개인도 한다고?
기관 투자자의 영역인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에 개인이 투자할 수 있는 상품이 나와 증권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블록딜은 주식을 대량 보유한 주요 주주 등이 거래 상대방과 가격·물량을 정해 두고 정규장 이외 시간에 큰 덩어리로 매매하는 걸 말한다. 보통 거래 규모가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달하고 사전에 기관 투자자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진행하기 때문에 개인의 접근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기관 투자자가 운용하는 사모펀드를 통해 개인도 간접적으로 블록딜 투자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말 두나미스자산운용은 ‘두나미스 블록딜공모주 일반사모투자신탁 1호’ 펀드를 95억 원 규모로 설정했다. DB금융투자·유진투자증권에서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판매된 사모펀드다. 개인 투자자의 최소 가입 금액은 3억 원이다. 추가형 상품이라 펀드 설정액은 더 커질 수 있다.
이 펀드는 자금의 최대 50%를 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상장 주식의 블록딜에, 나머지 50%는 공모주에 투자하는 구조로 짜였다. 두나미스운용은 헤지펀드 운용 전략의 일부로 블록딜 투자를 해왔으나, 이번처럼 블록딜을 핵심 투자 대상으로 삼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블록딜 매매 가격은 보통 시세 대비 10% 안팎 할인된 수준으로 정해진다. 한 예로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가 지난달 28일 SM엔터테인먼트(에스엠) 주식 75만5522주(684억 원어치)를 블록딜로 매도했을 때, 주당 처분 가격(9만531원)은 전날 종가(9만5800원) 대비 5.5% 낮았다. 이렇게 주식을 시가보다 싼 가격에 사들인 기관은 이를 더 높은 가격에 되팔아 수익을 낸다. 할인율이 높을수록 매수자가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여지가 커진다.
두나미스운용은 펀드 목표 수익률을 블록딜 수익 10%를 포함해 총 20%로 잡았다. 지난해엔 하이브, 두산밥캣, 금양, 한화오션, 솔루엠 등 10여 건의 블록딜에 1200억 원가량 투자했다. 올해는 1500억~2000억 원가량을 블록딜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한다. 운용사 측은 “연간 400건 정도의 블록딜 기회가 있는데, 그중 40~50건을 엄선해 투자할 계획”이라고 했다.
얼터너티브투자자문자산운용도 블록딜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얼터너티브운용 측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 말까지 394건의 블록딜에 참여했으며 매매 규모는 누적 3조8100억 원에 달한다. 동부증권(현 DB금융투자) S&T 사업부 에쿼티브로커리지 팀장 출신인 이동욱 대표가 대표운용역을 맡고 있다.
대체로 블록딜은 주가 하락을 부른다. 블록딜로 매수한 주식이 다시 대거 매물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 BRV캐피탈매니지먼트는 최근 한 달간 이차전지 소재 생산 기업 에코프로머티(에코프로머티리얼즈) 지분을 두 차례 블록딜로 매각했다. 지난달 21일 장 전 에코프로머티 주식 220만 주(2000억 원어치)를 블록딜로 처분한 후엔 당일 주가가 12% 넘게 하락했고, 이달 14일 210만 주를 블록딜로 추가 매각한 날엔 16% 가까이 급락했다. 지난달 28일 개장 전 하이브가 SM엔터 지분 일부를 블록딜로 팔아치우고 난 후 당일 SM엔터 주가는 5.3%, 다음 날은 4.6% 하락 마감했다.
다음 달 24일 블록딜 사전 공시 의무제 시행을 앞두고 최근 대규모 블록딜이 잇따르면서 일반 주주 사이엔 경계감이 커졌다. 블록딜 사전 공시 의무제는 유가증권시장·코스닥 상장사 임원이나 지분율 10% 이상 주요 주주가 발행 주식 수 1% 이상을 거래할 때 목적·가격·수량·기간을 블록딜 90일 이전부터 최소 30일 전까지 공시하도록 한 제도다.
주식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선 블록딜 예고 후 완료까지 기간에 주가가 떨어지면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주요 주주들이 서둘러 블록딜을 끝내두려는 수요가 많은 것으로 관측된다. 또 제도 시행에 앞서 지분율을 공시 의무 기준인 10% 아래로 낮추려는 목적의 블록딜도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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