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대학원생 '연구생활장학금' 재원 확보 '삐거덕'

박정연 기자 2024. 6. 1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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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은 기재부에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31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를 방문해 이공계 대학원생들과 '대학원 대통령과학장학금' 및 '연구생활장학금' 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정부가 이공계 대학원생 지원을 위해 마련한 한국형 스타이펜드(Stipend·연구생활장학금) 제도가 내년 전면 시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이 아직 완벽하게 마련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6월 말까지 기획재정부에 통보해야 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 확정된 예산이 담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충분히 확보하려면 각 대학이 운영중인 학생인건비 통합관리제(풀링제) 적립금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형 스타이펜드는 올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여파로 연구활동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린 이공계 대학원생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방안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월 대전을 방문해 이공계 대학원생이 학비나 생활비를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대폭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18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과기정통부는 이달 말 기재부에 통보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에 스타이펜드 제도 시행을 위한 일반 R&D 신규사업을 포함한다. 신설된 사업의 예산 규모는 일반 R&D 예산 요구 과정에 따라 10억원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과기정통부는 예산안 제출 이후 오는 9월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송부하기 전까지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 스타이펜드 시행에 필요한 총 예산을 확정한다는 게획이다. 제도 신설을 위해 정부가 지원할 예산 규모를 먼저 제시하지 못한 채 기재부와의 협의에 따라 정해지게 되는 셈이다. 과기정통부는 스타이펜드 시행에 투입해야 할 정부 R&D 예산 규모를 500억원 이상으로 보고 있다.

스타이펜드는 학생연구원이 학업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교가 생활비를 지원하는 제도로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서 시행되고 있다. 학업과 생계 안전성을 보장하며 학생들의 이공계 진학 유인책으로 여겨진다.

올해 초 정부는 R&D 예산 삭감과 의대 열풍 등으로 이공계 인재 이탈 심화 현상에 대한 위기감이 짙어지자 이공계 활성화 대책 중 하나로 한국형 스타이펜드 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이공계 석사 과정생에 월 80만원, 박사 과정생에 월 110만원의 장학금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스타이펜드 도입에 최소 1000억원 이상의 신규 재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국가 R&D 예산의 대규모 삭감이 있기 전에도 시행되기 어려웠던 만큼 앞서 과기계 일각에선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는 R&D 사업을 통해 확보할 수 있는 재원 외에 필요한 예산은 풀링제를 시행하는 대학이 보유한 학생인건비 적립금에서 충당할 계획이다. 풀링제는 국가 R&D 과제의 인건비를 연구책임자별 혹은 기관별 통합 계정으로 모두 넣은 후 다시 배분하는 제도다.

2022년 기준 풀링제를 시행하는 60개 대학의 학생인건비 적립금은 5592억원이다. 과기정통부는 이후 풀링제를 도입한 대학이 2개 추가돼 62개로 늘어났으며 올해 정부 R&D예산이 삭감되기 전까지 매년 R&D 예산이 증가한 만큼 이보다 많은 적립금이 쌓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원 조달 방향성이 정해졌다고 판단한 정부는 제도를 구체화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기존에도 개별 대학 연구실 차원에서 생활지원금과 유사한 성격의 지원금이 학생연구원들에게 지급되는 가운데 이러한 처우가 여의치 않았던 비인기 학과나 소규모 연구실을 중심으로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구상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연구비를 넉넉하게 확보하지 못해 그간 학생연구원에 대한 지원이 어려웠던 대학이나 학과로 하여금 안정적인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학생연구원에 대한 처우가 열악했던 연구실을 중심으로 지원 제도를 확대해 이공계 학생 일자리 질을 전반적으로 개선한다는 것이다.

각 대학이나 연구실 간의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은 남은 과제다. 개별 연구실이 확보한 사업비로 이뤄진 학생인건비 적립금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적립금 기여도가 높은 대형 연구실이 불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에 배분 조정안을 넘길 때까지 이 사업에 요구할 예산을 확정하지 못한 것도 이같은 입장 차이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대 한 교수는 "어렵게 따낸 사업으로 다른 연구실 학생들을 도와주게 되는 것인데 스승 입장에선 다른 학생보다 우리 학생들의 처우를 조금이라도 개선해주고 싶은 마음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관련 산업의 규모가 작아 연구비 수급이 쉽지 않은 처지의 연구실을 돕기 위한 취지도 이해하지만, 제도가 적용되는 과정에서 자칫 교수들 간의 갈등이 조장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기정통부는 예산 배분 조정안이 국회에 넘어가기 전까지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통해 합의점을 찾겠다고 설명했다. 대학 간 형평성을 맞추기 위한 조처의 일환으로 기존 스타이펜드 제도를 운영하며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는 4대 과학기술원은 이번에 신설되는 지원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예정이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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