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대장?' 1박 2일 '당일치기'로 바꾼 푸틴의 '의도된 지각'

노민호 기자 2024. 6. 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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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밀착에 따른 서방 반작용 의식 '톤 조절' 측면 등 주목
전문가 "북러 이미 협의 끝낸 상황…사전에 北에 양해 구했을 것"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국빈 방문한 북한 평양에 도착해 영접 나온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포옹을 하고 있다. 2024.06.19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한 가운데 방문 일정이 당초 공표됐던 1박 2일이 아닌 '당일치기'로 진행될 예정이다. 표면적으로는 푸틴 대통령의 '지각' 때문이지만 러시아 나름의 '셈법'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새벽 2시 45분쯤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직접 공항에서 그를 영접했다.

그는 원래 18일 늦은 밤에 평양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극동 사하(야쿠티) 공화국 야쿠츠크에서 일정을 소화한 뒤 북한으로 넘어오는 일정이 예상보다 길어진 듯하다. 그 때문에 평양에서 머무는 물리적인 시간이 줄었다.

푸틴 대통령에게는 '지각 대장'이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그는 과거부터 정상과의 회담에서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오기 일쑤였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당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회담 땐 4시간이 넘게, 2016년엔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를 3시간가량 기다리게 한 전례가 있다.

한국에서도 푸틴 대통령의 지각으로 1박 2일 일정이 당일치기로 바뀐 선례가 있다. 그는 2013년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당시 11월 12일 늦은 밤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다음 날 새벽 3시에 한국에 도착했다.

서방에선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지각 외교'가 회담에서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라고 보기도 한다. '푸틴 타임'(Putin time)이라는 용어도 나올 정도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양 도착 소식을 전하며 "김정은 동지께서는 푸틴 동지를 숙소까지 안내하시기 위해 대통령 전용차에 동승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다만 푸틴 대통령의 이러한 행보는 진영이 다른 민주주의 국가 또는 상대하기 껄끄러운 정상을 만날 때 자주 보여왔다는 점에서, 늦은 평양 도착을 '기선 제압' 목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김 총비서가 러시아를 찾았을 땐 30분 일찍 정상회담 장소에 나와 기다리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할 정도로 북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푸틴의 이번 행보가 오히려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된 지각'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북러 양국은 이번에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고 '불패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할 예정이다.

이는 북러의 밀착을 '위험한 밀월'로 보는 서방의 관점에서는 북러를 향한 압박의 강도를 높일 명분을 준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만 보면 국제사회에서 '불량국가'로 낙인찍힌 북한과 과도한 '질주'를 하는 것으로 이미지가 굳어질 경우 향후 서방을 향한 외교를 복구하기 어렵게 될 수 있다는 고려를 할 만한 상황이다.

최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지원하지 않은 한국에 사의를 표하며 관계 개선 의사를 표한 것도 이런 계산에서 나온 행동일 수 있다. 방북 예정 당일인 18일엔 서울에서 한중 외교·국방 고위당국자가 참석하는 외교안보대화가 개최됐는데, 지난 5월 베이징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났던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의식해 '정면승부' 외교전을 피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푸틴 대통령의 '지각'은 스스로가 과도한 북러 밀착에 대한 한미일 결속 강화 등 반작용을 의식해 일종의 '톤 조절'을 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상회담에 지각하는 것은 엄연한 외교적 결례라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선 마치 '구걸 외교'를 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 특히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새벽 3시쯤 혼자 공항에서 푸틴 대통령을 맞이한 것이 인민에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시선도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같은 우려를 극동지역 방문을 통해 막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극동 러시아는 북한 노동자 파견 등 북러 경제협력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곳이다.

푸틴 대통령은 아이센 니콜라예프 사하공화국 수장과 지역 주민, 학생들까지 만나는 일정을 소화했는데, 이후 새벽 강행군으로 평양으로 향한 것은 그가 극동을 중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북한에 주는 효과도 있다는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은 보유한 네 대의 전용기 중 세 대를 극동으로 가져간 뒤 이 전용기들을 다시 평양으로 몰고 갔는데, 이는 상당한 수의 수행원이 푸틴 대통령과 극동을 살펴봤다는 뜻도 된다.

전문가들도 이미 양국이 공식 발표할 사안은 실무적으로 합의를 끝낸 만큼 이번 푸틴 대통령의 지각은 사전에 양해가 됐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민주주의 진영을 대상으로 밀고 당기기가 있었다면 외교적 결례겠지만 북한 입장에선 결례가 아니다"라며 "이미 합의 내용 발표와 관련해 사전 조율이 끝난 만큼 정상 간에 고민을 하고 시간을 더 들일 필요가 없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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