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군포까지, '철도 지하화'에 80조 원 든다?
지난 1월 '철도지하화 및 철도부지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철도지하화법)'이 통과돼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조만간 선도 사업 공모에 들어가며, 오는 2026년부터는 전국의 철도 지하화 통합 개발 기본 계획이 수립된다. '철도 지하화'는 지난 4월 총선을 거치면서 여야가 공히 동의하는 '개발 이슈'로 확고히 자리잡은 모양새다.
법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철도 지하화는 "노후화된 구도심 지역 철도 부지와 주변 지역 개발이 도시를 재생하고 도시 경쟁력을 확보하며 도심 내 가용 토지 부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설명된다. 과연 그럴까.
'철도 지하화' 논의는 첫 단추부터 잘 못 끼워졌다. 무엇보다 '교통' 이슈가 아니라 '개발' 이슈로 접근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철도와 역사 주변에 살던 주민들의 욕망과 일부 개발업자들의 욕망이 만나 '철도를 지하로 집어 넣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각종 선거를 거치면서 힘을 받았다. 독일의 슈트트가르트21과 같은 '해외 사례'가 조명되면서 기술적으로나 사업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는 인식도 자리잡았다.
하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다. 지하화 필요성이 제기된 대표적인 곳을 예로 들어보자. 경부선, 수도권 전철 1호선이 통과하는 구간. 서울역이나 용산역을 따로 떼서 지하로 집어넣는 일이 아니란 상식적인 전제를 고려하면, 서울역부터 경기도 군포까지 철도를 지하로 넣는 대역사가 필요한 사업이다. 지자체로 치면 서울시 용산구, 동작구, 영등포구, 구로구, 금천구, 경기도 안양시, 군포시까지 얽히는 일이다. 정부 부처와 지자체, 주민들과 기업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존재한다.
이제 선거의 광풍도 지나갔다. 냉정히 따져 볼 차례다. 18일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과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 주최로 '철도 지하화의 쟁점과 공공철도의 과제' 세미나가 국회의원회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김태승 인하대학교 교수는 발제를 통해 '철도 지하화' 사업의 전망에 대해 짚었다. 김 교수는 막대한 예산 문제와 함께 '교통 사업 우선 순위'의 문제를 언급했다. 특히 철도 지하화에 드는 비용과 당장 노선 증대가 가능한 철도 사업을 비교했다.
경의선과 경부선을 도심 구간을 포함한 수도권 총 철로 71.6km를 지하화하는데 약 32조6000억 원이 드는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경부선의 수색-서울-광명 구간 고속선의 복선 전철화 사업엔 약 2조2000억 원이 든다. 어떤 사업이 더 중요할까?
부산광역시의 화명-부산역 구간 지하화에 8조3000억 원이 드는 것으로 예상되는데, 부산-울산 광역철도를 신설할 경우 1조 원 수준에 그친다. 대구광역시의 경우에도 경부선 지하화에 8조1000억 원이 드는 것으로 예상되는데, 당장 달빛철도를 신설하는 데는 4조5000억 원 수준에서 가능하다. 대전광역시도 경부선, 호남선, 대전선 지하화 사업을 할 경우 6조1000억 원이 드는 것으로 예상되지만, 당장 대전-세종-충북 광역철도 사업을 추진한다면 2조1000억 원 수준에서 그친다. 사업의 '우선순위'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철도 지하화' 관련 전국 수요를 다 합하면 주요 대도시 내부에 약 150km 수준의 철도를 지하화 할 수 있다. 그런데 총 사업비만 80조 원, 그 이상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80조 원이면 현존하는 철도망을 전국에 새로 하나 더 깔 수 있는 돈이다. 물론 80조 원도 사업비만 따진 것이다. 만약 철도를 지하화했을 때 정비, 유지, 관리비용을 비롯해 주민 안전 이동 문제, 안전 문제 등을 따지게 되면, 철도가 지상에 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수준의 비용이 거의 영구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철도 지하화가 추진될 경우 발생하게 될 불가피한 이슈들을 언급했다. 먼저 △건설 과정에서 기존 철도 시설 이용이 어려워진다. △향후 시설에 대한 추가 투자 및 보완 투자 비용이 급증할 수 있으며 △지하 50미터 이상의 교통 시설 이용에 따른 시간 비용과 교통 약자 편의 제약의 문제가 발생하고 △지하 깊숙한 시설의 밀폐성 등에 따른 화제, 화학가스 우려 등 안전과 건강의 문제가 존재한다.
김 교수는 "상업적 개발 이익이 있는 곳에 서민 친화적 사회후생 증대 공간은 탄생하지 않난다. 그리고 끝내 부족한 재원과 부채는 공공이 책임지게 돼 있다"며 "모든 광역시에서 몇 십조에 달하는 사업을 한꺼번에 뿜어내는 현재의 상황은 그저 포퓰리즘에 기초한 광풍일 뿐이다. 결국 이는 상업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재원 조달의 문제와 관련해 토론에 나선 유호림 강남대 교수는 "대규모 SOC 사업의 경우 대체로 선거 전후의 공약으로 출발해 그 실현까지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반면 그로부터 파생되는 사회적 편익은 충분치 않아 결과적으로 국가 재정이 낭비되는 후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과거 사례와 관련해 "예컨대 평창 동계올림픽을 이유로 건설된 알펜시아 리조트의 경우 1조 원의 부채를 조달했으나 당초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익을 기록하고 있으며 3500억 원이 투자된 양양 공항은 유령공항으로 전락하는 등 성공적인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전현우 서울시립대 연구원은 "재원 규모가 비상식적이고, 재원 조달 규모가 위험하며, 부동산 소유자에게만 이익이다. 집값 싸고 교통 편한 지역의 세입자는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즉, '철도 주변 수백미터 반경 안에 있는 '땅주인'을 위해 이 사업을 하는 것인가'라는 근본적 의문을 제기한다.
전 연구원은 철도공사와 정부가 '빚'을 내 부채가 증가되면 결국 철도 운임 인상 압력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 등 대도시 개발 사업을 위해 전국의 '철도 이용자'들이 비용을 부담하는 꼴이다. 철도 지하화에 따른 이용자들의 이동 문제도 지적된다. 현재 지하철은 지하 15~20미터 수준에서 운영된다. 고속철도 등 철도 시설을 지하화 할 경우 수직 50미터 아래까지 파내려가야 한다. 지상에서 지하 승강장까지 에스컬레이터로 150미터, 약 30도의 경사를 이동해야 하는데, 이런 방식의 숨은 이동 비용이 향후 수년간 수조원에 달할 것이란 예상도 제기됐다. 전 연구위원은 철도 지하화시 "결국 환승 저항을 극대화하고, 철도망 통과 도로 교통의 용량을 늘리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우철 국토교통수석전문위원은 '국철 지하화 총 사업비'를 약 79조3600억 원으로 추계했다. 김 수석전문위원은 "성공적인 '철도 지하화 통합 개발'을 위해서는 국가적 역량의 결집이 필요하다"며 "공공, 연구기관, 학회, 학계, 전문가 등이 포함된 지하화 기술, 도시 개발, 금융 및 지지체 소통을 위한 지역 협력 등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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