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소송공화국서 벗어나 신속·공정한 중재로 사회적 갈등 비용 줄여야"

김미경 2024. 6. 19.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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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석 대한상사중재원장
20년 경험가진 국내외 전문가 위촉
단심제로 시간·비용 절감효과 톡톡
서해안 기름 유출사고 대표적 사례
연간 중재 신청 건수 400여건 그쳐
찾아가는 중재특강 등 알리려 노력
맹수석 대한상사중재원장
맹수석 대한상사중재원장
맹수석 대한상사중재원장

"대한민국은 '소송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해마다 많은 송사가 발생합니다. 소송에 들어가는 사회적·물리적 비용을 치르는 대신 신속하고 공정한 '중재'를 활용한다면 분쟁으로 인한 갈등비용을 상당 부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대한상사중재원(중재원)의 맹수석(65·사진) 원장은 "중재 제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효율적인 분쟁해결 수단이다. 중재원이 제공하는 분쟁해결 제도에는 중재, 조정, 알선, 상담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중재는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면서 "아쉽게도 법원의 민사소송에 비하면 중재 활용이 매우 저조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단 시민들이 중재 제도를 잘 알지 못하거나, 중재의 효과를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2023년 사법연감을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1심 민사본안사건으로 접수된 소송만 100만 건이 넘는다. 판사 정원이 3200명 상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판사 1명당 연간 민사 재판만 300건 이상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2심(항소심)을 거쳐 3심(상고심)까지 가는 사건도 연간 2만8000여건에 달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재판을 한 번 하면 판결문을 받기까지 하세월이다. 평균재판 기간이 1심 기준으로 12개월을 넘는다. 3심까지 간다면 기간은 더 늘어난다. 헌법을 보면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현실이 법을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제때를 놓친 법적 구제는 무용지물이다. 유명한 법적 격언으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소송보다 훨씬 신속하고 경제적으로, 그리고 소송만큼이나 공정하게 피해구제를 받거나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대체제가 바로 '중재'다.

맹 원장은 "우리나라는 1966년부터 중재법에 따라 법무부 산하에 비영리 사단법인인 중재원을 두고 중재제도를 운용하고 있다"며 "3심제인 소송과 달리 단심제인 중재의 특성상 신속한 해결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원칙적으로 심리를 비공개로 진행하기 때문에 영업비밀과 프라이버시 보호에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정 업역에 수십년 이상 종사한 전문가가 중재인으로 참여해 판정하기 때문에 소송에 비해 절차적인 유연성을 갖고 있다. 중재 신청 당사자가 직접 중재인을 선정할 수도 있고, 심리절차에서 당사자의 진술권이 충분하게 보장되는 점도 장점"이라고 했다.

중재원은 법조계, 실업계, 학계, 공공단체 등에서 약 20년 정도의 경험을 가진 전문가 1191명을 국내중재인, 668명을 국제중재인으로 위촉해 중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분쟁의 세부 사항과 성격 등을 고려해 중재인 후보군을 중재 신청인에게 제공하면 양측의 우선순위에 따라 중재인을 결정한다. 중재 비용도 매우 저렴하다. 소송가액 1000만원을 기준으로 소송을 할 경우 인지세만 50만원 가량 들지만, 중재비용은 그의 10분 1 수준인 5만5000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중재는 1억원 미만 사건의 경우 평균적으로 4~5개월이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맹 원장은 "중재의 여러 특·장점 중에서도, 전문가에 의한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예를 들어, 첨단정보통신기술의 IT 콘텐츠분쟁 사건의 경우 법률 지식과 함께 해당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소송에서는 전문성을 보완하려 별도의 감정절차를 밟기도 하는데 문제는 감정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라며 "반면 중재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중재판정부에 들어가 정확히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판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다보니 분쟁 당사자들이 중재 결과를 수용하고 자발적으로 이행하는 비율도 매우 높다"고 밝혔다.

중재로 대규모 분쟁을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서해안 기름 유출사고다. 삼성중공업의 기름 유출사고로 피해를 입은 서해안 13개 어민단체가 중재합의로 삼성 측이 출연한 피해보상금 2900억원을 배분했다. 피해단체 간 분배와 활용방안에 이견이 커 합의에 이르지 못하다가 중재원의 중재판정을 수용하기로 합의하고, 지역별 배분 비율을 결정해 해결한 것이다.

맹 원장은 "중재절차의 특장점 중에 하나가 절차 비공개라 세세하게 공개할 수는 없지만, 엔터테인먼트 사건 등 여러 유의미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직 중재 제도는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연간 중재 신청 건수는 400여건이다. 분쟁이 생기면 곧장 '소송'으로 가는 문화가 걸림돌이다. 맹 원장은 "일반적으로 중재는 상호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하는 조정과 동일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재법상 중재 그리고 중재원의 중재는 법원의 확정판결과 같은 판정 제도라는 점을 널리 알리려고 애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맹 원장은 스스로를 '중재전파자'라고 칭한다. 공공기관이나 협회, 기업 등등 전국적으로 '찾아가는 중재 특강'을 다니느라 구두굽이 닳을 지경이다.

맹 원장은 "이렇듯 장점이 많은 중재 제도로 분쟁을 해결하려면 서면으로 중재합의를 해야 한다"면서 "계약을 체결하면서 '이 계약과 관련한 모든 분쟁은 중재원의 중재를 통해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는 문구를 삽입하는 게 매우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현재 정부와 여러 협단체에서는 더 손쉽게 중재를 활용할 수 있도록 소위 표준계약서를 보급하고 있다"며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테리어,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경우에도 중재를 분쟁해결조항으로 채택한 표준계약서가 널리 활용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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