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 열정 극단] ① "객석에서 쏟아내는 에너지가 연기의 원동력"
"좋은 작품 올리면 관객들도 무대 앞으로 올 것"
[※ 편집자 주 = 척박한 지방의 문화 환경 속에서 63년간 전북 도민과 웃고 울며 외길을 걸어온 창작극회가 180회 정기 공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지역 연극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관객과 소통해온 전북의 유일한 창작극단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이야기를 세 차례에 걸쳐 송고합니다.]
(전주=연합뉴스) 나보배 기자 = "좀 더 로봇 느낌을 내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마치 집사 같은 느낌이 들거든. 초반에 확실히 기계구나 하는 느낌을 살리는 게 좋겠어."
전북 전주한옥마을 인근에 있는 창작소극장 2층 연습실.
창작극회 180번째 작품 '제로 쉴드 제로' 공연을 앞두고 배우들과 연출가, 대표가 한데 모여 합을 맞추고 있었다.
20일부터 시작되는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배우들은 가상의 무대를 세워두고 동선을 맞추는 '블로킹 연습'에 한창이었다.
각 장면이 끝날 때마다 류가연 연출가가 아쉬운 점을 전하자 진지하게 듣던 배우들은 피드백을 즉각 반영해 다시 한번 대사를 읊었다.
'제로 쉴드 제로'는 가깝고도 먼 2050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탄소제로를 만들겠다는 정책이 실패해 지구가 황폐해지자 주택에 커다란 쉴드(방패막)를 치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꿈과 희망의 상징인 화성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주택을 가지지 못한 이들은 사막화된 세상에서 더 힘겹게 살아가야 한다.
'재이' 역을 맡은 김서영 배우(25)는 "우리가 살아온 환경이 아니라 미래에 살아갈 환경을 상상해서 연기하는 게 조금 까다롭고 어렵다"며 "단원들끼리 열심히 연구해서 그려낸 미래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이 될지 고민이 많다"고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창작극회 단원들은 모두 30여명이다.
5년 전 창작극회 단원이 된 20대 김 배우와 창작극회 대표이자 이번 공연에서 보험원을 맡은 50대 홍석찬 대표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경력을 가진 단원들이 함께 하고 있다.
김 배우는 연기를 전공했던 친구들과 함께 창작극회에 들어왔다.
이번 연극에서 '루이'역을 맡은 최나솔 배우(27)는 지난해 길을 걷다가 우연히 단원 모집 포스터를 보고 창작극회의 문을 두드렸다.
최 배우는 "연습실에 막 들어오는 순간, 책장에 꽂힌 자료집을 보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극단의 오랜 역사가 느껴진다"며 "처음엔 '내가 이 극단에 들어와도 되는 걸까'하는 부담감이 컸지만, 좋은 선배들과 함께 연기를 배우고 있다"고 맑게 웃었다.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1980년대와 비교하면 연극이 가진 저변은 좁아졌지만, 배우들은 개의치 않고 매일 공식 연습 시간보다 3∼4시간씩 일찍 연습실에 나와 대본을 연구한다.
배우들은 연기를 하는 원동력에 관해 묻자 입을 모아 '비좁은 관객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를 으뜸으로 꼽았다.
지난해 창작극회 단원이 된 장현채(32) 배우는 "새벽에 일어나 택배 일을 한 뒤 오후에 (연습실에) 나오는 생활을 반복했다"며 "다행히 지금은 일거리가 생겨서 오전에는 강연을, 오후에는 연습하고 있다. 연극이 재미없었으면 이런 생활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고단했던 '신입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식상한 표현이겠지만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이 손뼉을 쳐줄 때의 그 에너지가 참 좋다"며 "특히 유난히 감정을 잘 끌어올렸다고 느끼는 날 들리는 관객들의 박수 소리는 정말 감동이 크다"며 벅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 배우는 창작극회를 '뿌리'에 빗댔다. 구체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창작극회에서의 시간이 더 나은 배우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 배우는 "어릴 적부터 스펙트럼이 넓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음악에도, 연출에도 관심이 있기 때문에 배우로 시작해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연기를 하면서 (튼실한 뿌리처럼)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극에는 관객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객이 우리를 보러오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관객들에게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창작극회의 길에 함께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war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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