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잘남’이라는 신흥계급의 부상
“7년차 개업 변호사인 내가 결혼을 포기한 이유 쓰고 간다.” “100억 자산가가 말하는 연애 ㄷㄷ”
최근 온라인 ‘남초’(남성 이용자가 많음)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게시글 제목이다. 아무리 높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도 (성형으로도 극복 불가능하게) 못생기면 행복할 수 없다는 호소들. 핵심은 조건만 갖추면 ‘존예’(매우 아름다운 사람)를 만날 수는 있어도 ‘찐사’(진짜 사랑)를 받을 수 없다는 거다.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 미래의 아내 얼굴이 달라진다’ 같은 말이 남고 학급 표어로 버젓이 전시되던 시절을 생각하면, 남자들이 관계란 보상처럼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일단 남자들이 그만큼 여자들과의 ‘사랑’에 진심이었는지는 제쳐두자.)
‘도태 갤러리’가 등장한 이유
남자의 외모가 너무 중요해졌다. 존잘남(매우 잘생긴 남자)뿐 아니라 ‘알파남, 얼굴천재, 상(上)남자, ㅆㅅㅌㅊ남, 최상위포식자, 채드(chad)’와 같이 성적 매력으로 남성 간 티어(tier, 계급)를 나누는 용어들이 끊임없이 생성 중이다. 과거 남자의 외모 평가가 머리숱, 키, 복근처럼 일부 항목에 국한됐던 것과 양상이 다르다. 남성 뷰티 유튜버들이 조회수를 휩쓸고, “지금 얼굴로 살기 vs 100억 받고 얼굴 랜덤 돌리기”(@castu_korea)와 같은 밸런스 게임도 밈(meme)으로 유행 중이다.
당장 내놓을 수 있는 설명은 이렇다. 여자들도 경제활동이 가능해지면서 생존을 남성과의 결합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고, 셀러브리티라는 직업의 부상으로 비로소 ‘얼굴만 뜯어먹고 살 수 있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들의 존잘남 타령엔 (여자들이 유구히 겪어온 외모 압박의 털끝만치 겪으면서도 이렇게 죽는소리한다고? 이상으로) 과한 불안이 어려 있다. 존잘남이라는 신흥 미남은 모든 인생의 해결책이자, 차별의 근원이자, 세습(유전) 가능한 신분으로까지 지위가 격상 중이다.
‘단순히 외모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불편했던 모습을 극복하고 자존감까지 높여주는 솔루션 예능’ 프로 <메이크미남>(KBS joy)은 과거 성형 메이크오버 예능 <렛미인>의 남자 버전인데, 등장한 ‘문제남’들의 서사는 이렇다.
은둔형 외톨이(제4화 에피소드1 방구석 내남자), 아들에게 “아빠, 괴물이야”라는 말을 듣는 사람(제4화 에피소드2 도깨비 내남자), 승객들에게 외모 민원을 받은 사람(제9화 에피소드1 민원유발 내남자), 심지어 복스러운 얼굴이어도 무당업계에서 도태되는 사람(제1화 에피소드2 엠제트(MZ)무당 내남자)까지.
중요한 건 이 사연들의 진실 여부가 아니다. 연애뿐 아니라 아버지 노릇, 직업을 막론하고 모든 문제가 외모로 환원되는 서사가 사회적인 설득력을 얻는다는 점이다. 디시인사이드에서 연애‘만’ 못하는 이들을 위한 ‘모태솔로 갤러리’도 모자라 연애‘도’ 못하는 ‘도태 갤러리’가 등장한 이유다. ‘찐따남’ 콘텐츠의 부흥은 이 맥락에 놓여 있다. 찐따남의 특징을 강의 콘텐츠로 기획한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찐따학개론’, 나라가 ‘도태남’에게 ‘존예’를 랜덤으로 배정하라며 ‘연애 추첨제’를 주장한 도태 갤러리 고등학생, 불평등을 해소하라며 ‘외모세’ 도입을 주장하는 의견 등.(‘찐따’는 장애 비하 표현으로 지양해야 하지만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현상을 보여주고자 사용했음.)
여성 1년 조기 입학, 케겔 운동이 저출생 대책?
지금 한국 사회는 결혼이 단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계급 구분선으로 배치되고 있다. 기혼 여성 대 비혼 여성도 그렇지만, 특히 기혼 남성 대 독신 남성(이른바 ‘퐁퐁남’과 ‘도태남’)의 구별짓기가 뚜렷한 양상이다.(제1462호 ‘‘대안적 남성성’이라는 정치적 전장’ 참조) 전통적으로 (여성의) 섹스와 친밀성의 재분배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왔던 일부일처제 계약은 이제 시효가 다 됐다. 결혼과 출산(그리고 이전 단계로 여겨지는 연애·섹스)은 이제 일부의, 부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누구나 남자가, 누구나 가부장이 될 수 없다. ‘존잘남’은 단지 잘생긴 남자나 프리패스 시민권이 아니라, 이 섹슈얼리티 및 친밀성 변동의 맥락에 놓여 있다.
온 사회가 여자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하지 않는다며 안달이다. 여성 1년 조기 입학(한국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 케겔 운동(김용호 국민의힘 서울시의원)과 같은 ‘정책’의 황당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성의 몸과 돌봄이 절실하면서, 그저 연애와 결혼만 시켜놓으면 알아서 여성이 남자친구를, 남편을, 시가를, 자식을 ‘찐사’ 해줄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여성의 높은 자살률이 말해주듯 여자들은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겁다. 가사, 육아, 경제활동(혹은 경력단절) 모두를 감수할 만큼 결혼 제도가 매력적이지도, 이 제도를 감수할 만큼 남성이 매력적이지도 못하다. 또 관계 리스크도 커졌다. 성폭력과 데이트폭력 리스크는 물론이고, 연애에 이르는 길은 ‘제논의 역설’처럼 무한히 단계가 분절 중이다. ‘썸’타다가 언제든 ‘썸붕’(썸이 깨짐) 날 수 있고, ‘삼귀다’(썸보다는 진전된, 사귀기 직전 상태) 단계도 거쳐야 하며, 유사연애(관계 정립할 생각 없이 로맨틱한 상황만 즐기는 것) 상황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남성 탈락 이전에 동료 시민 탈락
‘도태남’은 정확히 말하면, 남성 탈락 이전에 동료 시민 탈락이다.(대신 가부장제의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거리 두는 정체성으로서 ‘비남성’(여성·성소수자·장애인·난민 등) 개념을 염두에 두길 바란다.) 성폭력과 소수자 혐오에 경각심이 없는 남성, ‘유콘노섹’(콘돔 쓰면 섹스 안 함)이지만 미혼모와 임신중절 여성은 혐오하는 남성, 맞벌이는 필수지만 가사노동과 양육을 ‘돕는’ 것에 만족하는 남성, 전업주부는 ‘노는 일’이라는 남성들, 반려자의 나이듦을 매력 없음으로 번역해내는 남성, 배우자나 자녀가 아프면 이혼하는 남성, “웅웅 자기 말이 다 맞아”가 여자를 존중하는 거라고 믿는 존재와 어떻게 삶을 섞을 수 있겠는가? 정말 사랑받고 싶은 존재들이 맞는지 의문이다. 이런 남성에게 기대할 거라곤 외적인 매력뿐이다. ‘존잘’ 정도가 아니라면 굳이 섹스, 연애, 결혼, 출산을 감행하지 않는다.(노파심에 말하자면 외모는 관계 치트키가 아니다. 대전시 ‘키 성장 지원 조례’ 추진이 ‘노답’인 이유다.) 누리꾼들 말처럼, “과연 한국 남자들도 한국 남자와 연애·결혼하고 싶은가?”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청춘의 봄비: 같은 비라도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풍경과 수해로 나뉘는 것처럼, 흥미롭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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