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할 것 같던 천우희·정재형 모았다…'용두용미'로 극찬받은 드라마 [인터뷰]

남보라 2024. 6. 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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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는 아닙니다만' 조현탁 PD 인터뷰
클리셰 없는 독창적인 스타일로 호평
정재형 음악감독, BGM 50곡 만들고
거절할 줄 알았던 천우희·장기용 수락
'스카이캐슬'부터 '히어로'까지 폭넓은 연출
"내 스타일 신뢰하지 않고, 작품에 녹아들어"
조현탁 PD가 11일 서울 마포구 JTBC 사옥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배우들한테 만날 자연스럽게 하라고 말하는데, 해보니까 잘 안 되네요.”

'스카이캐슬'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등의 드라마를 20년간 카메라 뒤에서 만들어 온 조현탁(52) PD. 인터뷰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자 땀을 뻘뻘 흘리며 이같이 말했다. 포즈를 취할 때마다 그는 왼손을 감췄다. 왼손 중지에 지지대를 감고 있었는데, 지난달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하 ‘히어로는’)의 막바지 작업 중 손가락 힘줄이 끊어지는 부상을 당해서다. 수술 여부를 논의하다 그의 직업을 알게 된 의사가 마침 이 드라마 팬이었다. “진료받으러 갈 때마다 의사가 90도로 인사를 하고는 다음 화는 어떻게 되냐고 계속 묻더라고요. 치료 얘기는 안 하고요. 하하하.”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드라마

JTBC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JTBC 제공

최근 종영한 ‘히어로는’의 시청자 반응도 이 의사와 비슷했다. “이렇게 다음 화가 예상 안 되는 드라마는 처음”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불면증, 우울증 등 ‘현대인의 질병’에 걸려 초능력을 못 쓰게 된 가족을 다룬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이지만, ‘히어로’ 장르 문법을 따르지 않았고 신데렐라·불치병·불륜 등 K드라마의 흔한 클리셰도 없었다. 평론가들은 “독창적인 스타일과 철학이 살아있는 드라마"라고 평했고, 시청자들은 “클리셰 없는 드라마”라며 환영했다. 아무도 예측 못 한 결말로 ‘용두용미’(‘용두사미’를 변형한 말로, ‘처음과 끝이 모두 장대하다’는 뜻)라는 수식어도 추가됐다. 지난주엔 드라마 화제성 1위에 올랐고, 넷플릭스 비영어권 TV 부문 3위를 기록하는 등 관심도 뜨거웠다.

극본은 ‘연애 말고 결혼' '내성적인 보스' 등을 집필한 주화미 작가의 작품. 조 PD는 2년 전 처음 스토리를 접했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코로나19에 걸려 많이 아플 때였어요. 시놉시스를 읽고 누웠는데 이야기를 계속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재밌겠다 싶었죠.”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은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6월 1주 차 TV-OTT 드라마 화제성 1위에 올랐고, 넷플릭스의 비영어권 TV 부문에서 3위에 올랐다.

"정재형 음악감독의 열정... 깊이 존경하게 됐어요"

극본·연출·연기·음악 네 박자를 고루 갖춘 수작으로 평가받았지만, 처음에는 "이 조합은 안 될 것"이란 비관적 시각이 많았다. 조 PD는 일할 때 늘 작곡가·가수 정재형의 피아노 소품집을 틀어놓는 오랜 팬. 그가 정재형을 음악감독 후보로 점찍었을 때 주위에선 고개를 저었다. 드라마 음악은 작업량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혹시나 싶어 대본을 줬는데 정재형은 “K드라마와 다르다”며 수락했다. '히어로는'으로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데뷔한 정재형은 지난 1년간 “입시 치르듯” 몰두하며 50곡 넘게 작곡했다. 주인공 도다해(천우희)가 처음 팥빙수를 맛봤을 때의 황홀함을 표현한 피아노 선율, 가수 이소라가 가사를 붙인 노래 ‘다시 봄’에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정 감독은 곡이 괜찮다고 해도 끊임없이 수정해요. 미련해 보일 정도로요. 일하는 걸 보며 깊이 존경하게 됐어요.”

가수 정재형(맨 오른쪽)과 음악팀은 작업실 구할 시간을 놓쳐서 작은 방에서 함께 작업했다. 정재형 SNS 캡처

캐스팅도 반전이었다. 천우희는 거절 의사를 전하려던 미팅 자리에서 조 PD의 긴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 장기용은 아직 서른 한 살인 데다 제대 후 첫 작품으로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역할을 택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수락했다. 이들의 연기에 해 질 녘 방 안의 공기까지 전하는 조 PD의 섬세한 연출이 더해져 따뜻하고 다정한 세계가 완성됐다. 조 PD는 “현실은 판타지처럼 그리고 판타지는 현실처럼 다뤄서 시청자들이 이 세계를 믿고 몰입할 수 있게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화재 참사 생존자이며 노란색이 상징적으로 쓰인 점 등이 세월호 참사를 떠오르게 한다는 일부 해석에 대해서는 “그걸 염두에 두진 않았다”고 말했다.


"내 연출 스타일 신뢰하지 않는다"

조현탁 PD가 11일 서울 마포구 JTBC 사옥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조현탁 PD가 2018년 연출한 드라마 '스카이캐슬'. JTBC 제공

조 PD가 연출할 때 가장 신경 쓰는 건 ‘자기 색깔 지우기’다. “제 스타일을 신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작품마다 맞는 옷이 있기 때문에 그 작품 안에 온전히 녹아들어가 작품이 빛을 발하게 하려고 해요. 사람은 취향의 노예라서 아무리 애를 써도 제 취향이 들어가긴 하지만요.” ‘스카이캐슬’은 장르물로 접근했고 ‘히어로는’은 남자 주인공의 ‘바보 같은 직진’에 초점을 맞춰 연출했다. 2005년 MBC 프로덕션 PD 시절 MBC ‘베스트극장’을 통해 단막극으로 데뷔한 그는 프리랜서 PD로 활동하며 10편이 넘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조 PD가 눈을 가장 반짝인 건 시청자 얘기를 할 때였다. “(현장에선) 시청자 반응에 관심 없는 척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 몰래 들어가서 다 챙겨 봐요. 작품의 의미나 디테일한 연출을 꼼꼼히 파악해주는 시청자들 의견을 볼 때마다 너무 좋고 감사해요.”

드라마는 끝났지만 그의 이름 ‘현탁’은 TV에서 당분간 계속 불릴 예정이다. tvN에서 방송 중인 드라마 ‘졸업’을 연출한 안판석 PD가 막역한 사이인 그의 이름을 극 중에서 상대적으로 악인인 학원장 이름 ‘김현탁’에 사용했다. “다음 작품 계획은 아직 없고 쉬면서 여행을 다니려고요. 다음 작품의 악인 이름은 정해놨어요. ‘판석’이요. 하하하.”

조현탁 PD가 한국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다빈 기자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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