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러데이, 족쇄 수비의 우승청부사

김종수 2024. 6.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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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시즌 최종 승자는 보스턴 셀틱스였다. 정규시즌에서 최다승률을 기록하며 우승후보다운 면모를 뽐낸 그들은 플레이오프들어서도 승승장구했다. 결국 치열한 서부 경쟁을 뚫고 올라온 댈러스 매버릭스와 파이널에서 맞붙어 현격한 체급차를 보여주며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패권을 거머쥐었다. 무엇보다 라이벌 LA 레이커스를 제치고 다시금 역대 통산 우승 1위(18회)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깊은 우승이었다. 그야말로 보스턴은 축제 분위기다.


올시즌 보스턴은 팀 농구가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보스턴에는 니콜라 요키치, 루카 돈치치 등 이른바 개인의 능력으로 승부를 좌지우지하는 대형 에이스는 없다. 하지만 매경기 주인공이 바뀔 정도로 다수의 A급 선수들이 여럿 버티고있으며 하나같이 곰수겸장이다. 제이슨 테이텀(26‧203cm), 제일런 브라운(28‧196.2cm)의 스윙맨 듀오는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면서 에이스 역할을 나눴고 묵묵하게 뒤를 받쳐주던 데릭 화이트(29‧193cm)는 이른바 소리없이 강한 남자였다.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29‧221cm)같은 경우 부상으로인해 많은 시간을 뛰지는 못했지만 1차전에서 경기 초반부터 폭발하며 시리즈 전체의 기선을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부상공백을 메워준 것은 감독보다도 나이가 많은 노장 알 호포드(38‧206cm)였으며 샘 하우저(27‧201cm)도 알토란 같은 활약을 이어나갔다.


즈루 할러데이(34‧191cm)도 빠질 수 없다. 그는 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수비수중 한명이다. 수비를 통해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라는 극찬을 받고있으며 실제로 무시무시한 수비력을 앞세워 전 소속팀 밀워키 벅스의 파이널 우승을 이끈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보스턴에서 챔피언 등극에 크게 일조했다.


가뜩이나 수비가 좋은 보스턴에 할러데이의 가세는 상대팀들 입장에서 악몽이었다. 중요한 경기에서 할러데이가 상대 앞선의 활동량과 에너지 레벨을 확 다운시켜 놓아버리면 팀은 그만큼 경기를 풀어나가기가 수월해 질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일정 수준의 공격력을 꾸준히 가져가고있으며 한번씩 폭발하는 날은 에이스로 빙의하기도 한다.


할러데이의 수비가 무서운 것은 지속적인 끈질김에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수비수의 경우 폭발적으로 따라붙으면서 상대를 락다운시키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파울이 남발되거나 본인이 지치는 경우도 적지않다. 할러데이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고 적절하게 자신의 페이스를 조절하며 경기 내내 상대를 괴롭힌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할러데이의 늪에 빠진 선수들은 처음에는 크게 인지하지 못한다. 조금 귀찮고 신경 쓰인다 정도인데 계속해서 따라붙으며 플레이에 지장을 주고 자신이 가려는 동선에서 기다렸다는 듯 손질을 해대면 그제야 ‘잘못 걸렸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보통 그러한 수비수를 떨쳐내는 기술로는 훼이크가 있다.


돌파할 듯 하다가 멈춰서서 미드레이지를 쏘고 평소같으면 슛을 던지는 타이밍에서 패스가 나간다. 자신은 살짝 훼이크를 주면서 수비수의 큰 동작을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플레이의 변화룰 준다. 그러나 할러데이를 상대로는 이마저도 쉽지않다. 뭐든지 적당히가 몸에 배인 그는 결정적인 상황이 아니면 움직임을 크게 가져가지 않는다.


적당히 뜨고 적당히 휘두르고 적당히 움직인다. 타이밍을 빼앗겼다해도 다음 동작으로 전환하기가 빠른지라 쉽게 훼이크에 걸려들지않거나 대응이 용이한 이유다. 경기를 치르다보면 리듬이라는게 있다. 특히 경험많은 에이스급 플레이어들은 설사 당장은 좋지않아도 스스로 템포를 조절하면서 컨디션을 찾기도 한다.


할러데이의 수비에 걸리게되면 그런 플레이가 어려워진다. 무심한 듯 꾸준하게 적당한(?) 페이스로 압박을 유지하는지라 무엇인가를 재정비할 시간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할러데이와 옥신각신 하다보면 어느새 표적이 된 상대의 몸은 이런저런 데미지로 물들게되고 서서히 잠식되듯 컨디션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공격수가 매치업 상대의 수비에 버거움을 느낄 경우 팀 수비의 도움을 받게되는데 그중 하나가 스크린이다. 동료의 스크린을 이용해 수비수를 따돌리거나 잠깐이라도 움직임을 묶어두고 그 사이에 공격을 성공시킨다. 문제는 할러데이는 스크린을 빠져나가는 움직임 또한 빼어나다는 사실이다.


스크린을 거는 상대팀 선수의 움직임을 미리 읽기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등을 지고 따라다니거나 좁은 틈을 자유롭게 오가기 일쑤다. 거기에 더해 힘이 워낙 좋은지라 다른 포지션 선수와 미스매치가 발생해도 몸 싸움으로 어느 정도 버티는 플레이가 가능하다. 일대일 수비, 팀수비에 더해 미스매치까지 견디는 그야말로 토탈패키치 디펜더라고 할 수 있다.


​파이널에서도 할러데이의 수비는 여전했다. 시리즈 초반 끈질긴 수비로 가뜩이나 보스턴 원정에서 부담을 느꼈던 카이리 어빙의 컨디션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으며 스위치 수비시에는 자신 앞에 누가있든간에 평균 이상으로 묶어버렸다. 파이널 MVP는 브라운이 가져갔지만 보스턴 팬들 사이에서 할러데이의 이름도 적지않게 불려진 이유다. 할러데이 영입은 보스턴 입장에서 신의 한수였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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