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 “전쟁기념관 인프라 탁월 … 관람 통해 애국심 더 커졌으면” [세상을 보는 창]
입장료 없고 접근성 좋아 외국인에 인기
각국 대사관 직원들에게는 韓 이해의 장
명실상부 대한민국 공공외교 첨병 역할
전사자 명비 오류 발견되면 신속히 조치
6·25때 돌아가신 삼촌 이름 바로잡기도
신냉전 흐름 속 韓 전략적 가치 활용 필요
김정은에 ‘核무기는 파멸’ 메시지 전해야
“전쟁기념관 연간 방문객이 약 300만명인데 그분들께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기념관 방문 전과 비교해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 즉 애국심이 더 커졌으면 하는 것뿐입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 사이에 전쟁기념관이 꼭 가봐야 할 명소로 꼽힌다.
“여러 이유가 있다. 대통령실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도 그렇고 접근성이 아주 좋다. 선진국은 다 전쟁 추모 시설을 갖고 있다. 모두 지난 역사와 현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창으로 꼽힌다. 우리 기념관은 입장료가 없고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며 대형 버스 주차도 편리해 단체 관람객이 특히 많다. 기념관을 찾는 외국인이 하루 2000명가량 된다.”
―2023년 전북 새만금에서 열린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가 날씨 등 여러 요인들 탓에 파행을 겪었다. 잼버리에 참여한 외국 청소년들이 대거 전쟁기념관으로 몰렸는데.
“이 장군은 육군에서 2군 사령관까지 지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군생활을 하던 시절 장교들 사이에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분이 쓴 연대(聯隊) 전투 전략서 등을 전후에 우리 장교들이 다 찾아서 읽을 정도로 큰 존경을 받은 분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전쟁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이 장군에게 초대 회장을 맡아 달라며 직접 부탁했다. 그분이 오늘날 전쟁기념관의 건물, 콘텐츠 등을 꼼꼼히 다 챙겼다. 역사에 남을 기념관의 토대를 만든 분이다.”
오늘날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등 한반도가 겪은 역사적 비극을 알리는 장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6·25 참전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 정상급 인사들은 물론 외국 장관, 국회의원, 군사 지도자 등이 한국에 오면 반드시 찾는 성스러운 공간이 되었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공공외교의 최전선인 셈이다. 백 회장은 “외국인들이 6·25 전사자 명비에 새겨진 유엔군 장병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찬찬히 읽는 모습에서 참전용사를 대하는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임 후 외국에서 온 여러 요인을 맞이했을 텐데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마크 밀리 전 미국 합참의장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기념관 내 6·25전쟁 상설 전시관을 한 번 둘러보고 난 뒤 ‘다시 가보고 싶다’고 했다. 월턴 워커 장군(1950년 작고)이 이끈 낙동강 방어선 전투 관련 전시물 앞에서 수행원들과 30분가량 의견을 나눴다. 그 다음 일정이 있는데도 시간 제약에 구애받지 않고 전시물을 둘러보고 토의하는 모습에 참 진지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심지어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내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 새겨진 이름들에 오류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삼촌이 6·25전쟁 때 돌아가셨다. 기념관에 와서 전사자 명비를 보니 이름이 잘못 기재돼 있더라. 10년 전쯤이었다면 굉장히 격앙됐을 것이다. 그런데 ‘아, 이걸 바로잡으라고 나를 전쟁기념관에 보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업체가 전사자 이름을 새긴 명비를 납품하면 그것을 받아 감수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데, 그동안 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결과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류 전체를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다. 한국군 말고 유엔군 전사자의 경우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니 참으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기념관을 찾는 어린이들이 전사자 명비를 보며 ‘저 분들은 왜 돌에 이름이 붙어 있어’라고 묻는다. 국가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유족이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명비 수정 등에서) 최대한 신속히 조치를 하겠다.”
“불행하게도 세계사의 흐름이 신냉전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더니 이제 북·중·러 3국이 밀착하고 있다. 그에 맞서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꺼내들었다. 한국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 북한이 핵무기를 만지작거리는 순간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군사적 대비와 외교적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선 한국이 중립국이 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일은 안 된다. 좀 더 인내심을 갖고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의 북·러 밀착은 결코 오래가지 않는다. 러시아가 당장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쓸 무기가 필요해 북한과 밀착할 뿐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러시아도 (북한보다) 한국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11월 미국 대선이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을 놓고서 논의가 분분하다.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이 연임할지, 아니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지 예측이 쉽지 않다. 어차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사안 아닌가. 누가 되든 미국의 한국 관련 정책은 크게 안 바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한국이 굉장히 중요한 국가다. 미국은 한국을 자기네 편에 묶어둘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주한미군 철수설에 대비하기 위한 ‘플랜B’는 필요하다. 자체 핵 능력을 키우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든 그 결과에 우리 정부가 당황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어떤 경우든 대한민국의 전략적 가치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은 무엇인가. 또 남은 임기 동안 하고 싶은 일은.
“6·25전쟁 아카이브(기록물)와 관련해 국내 대학교수 등에게 용역을 줘 플랫폼을 구성하고 있다. 이후로는 해외에 있는 한국 연구자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대한민국 공공외교의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 한반도 전쟁사를 꿰뚫는 전쟁 물자 변천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을 만드는 것도 희망한다. 또 전쟁기념관 후원회에 해당하는 ‘전쟁기념관회’의 내실화를 기하고자 한다. 기념관은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인 만큼 돈은 필요없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게 목표다. 전쟁기념관회가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플랫폼이 되었으면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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