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슬플 때 만화를 봐 [콘텐츠의 순간들]

조경숙 2024. 6.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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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를 위한 만화가 있다. 작가는 먼저 간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만화를 그리고, 독자는 작품을 읽으며 제 경험을 떠올린다. 이런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빗장을 풀고 위로받게 한다.
일본 생활담을 다룬 웹툰 <아오링 도쿄>. 맨 앞의 캐릭터가 작가 본인을 딴 아오링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일본에서의 생활담을 다룬 웹툰 〈아오링 도쿄〉는 오랫동안 ‘애정하는’ 만화다. 한 화 한 화 아끼고 아껴 음미하며 볼 정도로 좋아한다. 〈아오링 도쿄〉의 주인공은 한국인 ‘아오링(링짱)’이다. 그는 어느 날 불현듯 일본에 건너갔다가 그곳에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기른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남편과 좌충우돌하며 식당을 운영했고, 식당 문을 닫은 후에도 그곳에 거주하며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며 그가 마주했던 여러 손님과 지인에 대한 이야기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주인공은 ‘아키코’로, 링짱의 술집을 자주 찾는 단골 중 한 명이다.

아키코는 기분파다. 빠칭코에서 돈을 따 기분이 한껏 좋은 날엔 “오늘은 내가 낼 테니 다들 마셔”라며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한턱낸다. 돈을 잃어 빈털터리가 되면 외상을 달아놓고 술을 마신다. 아키코가 무슨 돈으로 빠칭코에 다니는지, 아이들은 누가 돌보는지, 왜 그토록 술을 마시는지는 링짱도 알지 못한다. 어쨌든 링짱은 그의 친구나 지인이 아니라 그가 드나드는 가게의 주인일 뿐이니까. 게다가 그는 허언증처럼 말을 꾸며내는 습관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도 받는다. 그러나 술 몇 잔에 취해 술집 벽에 기대어 금세 곯아떨어지곤 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링짱은 이렇게 독백한다. 이해할 수 없고, 잘 알 필요 없는 타인의 삶이지만 “그가 살고 있는 이 피로한 삶만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라고.

더불어 그는 이런 문장을 덧붙인다. “어떤 삶은 동경했고 내가 속해 있는 삶은 미워했지만 정말로 미워할 순 없었다.” 그 때문일까. 아키코도 미워할 수가 없다. 그와는 ‘이 피로한 삶’이라는 교집합이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이 만화의 댓글난에는 아키코를 욕하거나 비난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 왜 저렇게 술에 취해 있느냐며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아키코라는 한 사람의 삶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에 몰입하여,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댓글이 다수다. 사람이든 사건이든 무언가로부터 거리를 둔 채 그저 혀를 차거나 미워하기는 쉽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 어쩌면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솔직하게 바라보며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야말로 실은 가장 어려울지도 모른다.

“네 이야기를 그릴게, 기억에 남도록”

그러나 〈아오링 도쿄〉는 그런 기억을 놓치지 않고 떠올리며, 하나같이 깊숙이 파고든다. 최근 에피소드는 우동과 관련한 것이었다. 링짱의 오랜 친구가 일본으로 놀러 왔을 때의 일이다. 친구에게 무엇이 먹고 싶으냐 물으니, 친구는 단번에 ‘우동’이라 답한다. 그러나 링짱은 친구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 일본의 유명 맛집들에 데려가 온갖 산해진미를 내놓는다. 딱 우동만 빼고. ‘우동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같은데 굳이 여기서?’라는 마음에 우동만 대접하지 않은 것이다. 여행의 마지막 날, 식사 도중 친구는 “어쩐지 속이 허해서 정말이지 우동을 먹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신이 번쩍 든 링짱이 대신 부랴부랴 볶음우동을 주문했지만 결국 따뜻한 국물을 곁들인 우동은 대접하지 못하고, 친구는 귀국했다. 그런 뒤 친구는 거짓말처럼 몇 개월 뒤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지고 만다.

다른 음식을 대접하느라 우동을 먹게 하지 못한 것. 마음에 걸릴 수는 있으나, 뭐 그리 대단한 잘못인가. 친구가 떠난 뒤에도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어째서 그렇게 미안할까. 물론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이미 안다. 하늘 위의 친구가 그런 마음을 썩 좋아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부터 끝내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 역시 우리가 익히 겪어온 것이다. 그건 죄책감이나 부채감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이따금 맴돌며 그 곁에 머무르는 것. 다름 아닌 애도다.

링짱의 애도가 우동을 보며 그 친구를 줄곧 떠올리는 것이라면, 나의 애도는 이러한 만화를 읽을 때마다 꼭 내 친구 성용의 얼굴을 그려보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은 내 친구. 회사 연수 다녀와서 보자, 연락을 나눴다가 그 길로 영영 못 본 친구. 나는 연수 기간 외출이 허락되지 않아 친구의 장례식도 보지 못했는데, 그게 자꾸만 마음에 남았다. 이후 49재에 가서 목 놓아 울고, 묘에 찾아가 꽃을 놓고 기도했지만, 그렇게 하고도 장례식에 가지 못한 나를 이상하리만큼 용서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나를 미워하는 것이 친구를 떠나보내는 일보다 훨씬 쉬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종종 그에게 편지를 쓰고,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꺼내 본다. 그가 얼마나 올곧고 바른 사람이었는지, 살아 있었으면 또 얼마나 빛났을지 상상하면서.

한 번은 무심하게 인스타그램을 훑어 넘기다가, ‘악어대리’ 인스타툰의 작가(@ggul_gim)가 친구의 죽음을 그린 에피소드를 발견했다. 작가의 친구 ‘밥’이 떨어지는 간판에 맞아 뇌출혈로 급사한 내용이었다. 게다가 그는 간판 아래를 보행하는 어린이를 감싸다가 사고를 당했다. 밥이 죽은 후, 작가는 한동안 일상 속의 모든 순간에 늘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고 썼다. 어느덧 그는 이렇게 다짐한다. “네 이야기를 그릴게. 모두의 기억에 남도록.” 그리고 바로 다음 장면에서 그는 친구가 ‘운이 좋아서 안 죽었지’라고 농담을 건네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이 표현 때문에 이야기 안에서만은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꿀김 작가의 인스타툰 ‘악어대리’.

친구가 영영 이 만화를 보지 못할 것을 잘 알면서도, 어떤 작가들은 그 죽음을 만화로 그린다. 직접 그린 만화 속의 한 장면으로라도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애도하기 위해서. 그리고 만화를 읽는 독자들마저 자기만의 누군가를 떠올리고 애도할 수 있도록. 실제로 이 회차의 게시물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지인을 그리워하는 댓글들이 듬성듬성 남겨져 있다.

종종, 만화는 애도다. 누군가의 죽음을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 죽음을 떠올리고, 하얀 스크린에 그려내고, 또 누군가 읽게 하는 그 모든 순간이 그렇다. 떠나보내지 못하고 캐릭터로 붙잡고 있는 장면에서도, 친구의 얼굴을 그릴 수 없어 뒷모습만 등장시킨 컷에서도 여전히(〈아오링 도쿄〉). 〈언플러그드 보이〉의 현겸은 슬플 때 힙합을 춘다고 했던가. 나는 슬플 때, 꼭 떠올리고 싶은 누군가가 있을 때 항상 만화를 읽는다. 마음속에 걸어둔 빗장을 풀고서 기어코 나를 위로하고야 마는 작품이 꼭 하나는 있으니까. 이 거대한 콘텐츠의 망망대해 속에서, 때로는 도파민이 아니라 애도와 위로를 향한 여정도 괜찮지 않은가.

조경숙 (만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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