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푸틴의 방북, 북-러의 한반도 프레임

경기일보 2024. 6. 1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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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 일정이 공식 발표됐다. 북-러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와 그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북-러 정상회담은 크게 외교와 군사 두 분야의 협력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정상회담은 공개되는 외교적 메시지와 공개되지 않는 외교적·군사적 협력의 내용으로 짜여질 것이다. 그중 북-러 정상회담의 결과 중 외교적 협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예비 텍스트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2023년 11월20일 러시아 외교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는 평양을 방문해 최선희 북한 외무상과의 회담 직후 단독 기자회견을 가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라브로프 장관은 한미일 군사 활동 증가,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 전제 조건 없는 한반도 안보 문제 논의를 위한 정기적인 협상 프로세스 구축 지지, 북-러의 지속적인 고위급 접촉 등을 강조한 바 있다.

반면 북한의 노동신문은 이 회담을 ‘두 나라 인민들의 복리 증진’, ‘복잡다단한 국제정치정세 속 호상 지지와 연대’, ‘국가의 자주권과 발전이익 고수’, ‘포괄적이고 전략적 관계 발전’,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정세에서 공동행동 강화’ 등의 표현을 사용해 보도했다. 러시아가 동북아 안보 정세와 한반도 평화협상의 메시지에 방점을 찍었다면 북한 보도는 양자 관계의 강화, 보다 긴밀한 관계 발전, 정세에 대한 공동 대응에 초점을 맞췄다.

양측의 강조점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전략적 입장, 외교적 협력 포인트를 읽을 수 있다. 한반도 문제를 ‘안보’의 문제로 보고 협상 프로세스를 강조한 부분이다. 첫째, 러시아의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중재자, 해결사 역할을 부각하는 차원이다. 분쟁 지역에 대한 평화협상 중재자의 이미지 연출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연이은 주변국 침공으로 강하게 각인된 호전적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둘째, 한반도 문제를 안보 위협의 프레임으로 본다는 메시지다.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북한의 호전성이 아닌 한미의 대북한 적대정책과 군사적 위협에 있다고 보고 북핵을 안보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대미 견제, 한미일 안보협력 차단의 공통된 이해가 깔려 있다. 라브로프 장관은 한반도 긴장의 주요 원인으로 강화된 한미일 안보협력,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한반도 문제의 초점을 북핵에 두기보다는 한미일의 ‘비건설적이고 위험한 노선’에 둠으로써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지지, 러시아의 한미일 차단 의지를 드러냈다.

세 번째는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안전보장 차원의 핵군비 통제 추진을 복선으로 깔고 있다는 점이다. 라브로프 장관은 ‘전제 조건 없는 대화’와 ‘정기적인 협상프로세스’를 언급했다. 전제조건이 없다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하는 한국이나 미국의 입장과는 다르다. 협상의 성격의 측면에서 보면 러시아의 제안은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안전보장 차원의 포괄적 대화를 의미한다. 러시아는 최근까지 가장 활발하게 한반도 문제 해결 방안을 제안해 온 국가였다. 2017년 ‘한반도 긴장완화 3단계 로드맵’을 통해 적대적 행위 중단, 평화협정 체결, 군비통제(군축)를 각각의 단계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라브로프의 이번 발언은 결국 지금까지 성취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문제 삼기보다는 북미 및 남북의 상호 위협 감소, 안전보장 차원에서 군비 통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향후 러시아는 북-러 밀착 속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다자적 평화협상을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최근까지의 북한 관련 중국의 입장 표명을 보면 중국도 이러한 러시아의 접근 방식에 직간접적으로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이런 외교적 메시지는 북-러의 무기 거래나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희석하면서 북한의 핵 개발 정당성과 핵무기 보유를 진영 내에서 기정사실화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상호 안전보장과 핵군비 통제로 프레임화하려는 북-러의 암묵적 공조 차원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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