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종이꽃밭과 페이퍼샤먼
종이 위에서 태어나 종이 속에서 살다 종이에 싸여 묻히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인이다. 불과 한 세대 전까지도 우리는 한지로 만든 장판 위에서 태어나 벽과 문에 한지를 바른 방에서 살다 죽어서는 한지로 염을 해 땅에 묻혔다.
그뿐이랴. 우리는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본질적인 용도 이외에도 많은 생활용품에 종이를 활용했다. 틀 위에 종이를 여러 겹 발라 항아리, 화살통, 안경집 등을 만드는 지장공예, 여러 겹 붙인 두꺼운 종이를 재료로 반짇고리, 물병, 지갑 등을 만드는 후지공예, 종이를 꼬아 만든 노끈을 재료로 돗자리, 화병, 찻상, 망태기 등을 만드는 지승공예가 있다. 이밖에도 색지공예, 전지공예, 줌치공예 등이 있으며 이런 기법들을 활용해 비옷, 우산, 요강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썼으며 유둔지로 군용천막을 만들고 갑의지로 종이갑옷을 만드는 등 군사용으로도 활용했다.
종이는 2세기 초 후한의 채륜이 생산, 보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610년 무렵 고구려 승려 담징이 왜로 건너가 종이와 먹의 제조법을 가르친 것으로 일본서기에 기록돼 있으니 그사이 언젠가쯤 한국에서 종이가 제조됐을 것이다. 한지는 닥을 재료로 만드는데 닥을 현대 중국어에서는 저(楮)라고 발음하지만 2세기까지는 중국에서도 닥이라고 발음했다고 하니 2세기 무렵 한국에서도 닥을 재료로 종이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보는 연구도 있다. 실물 한지로 가장 오래된 것은 석가탑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다라니경'으로 서기 704~751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려 1300년 전의 종이 인쇄물이다.
종이는 전통공연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종이는 주로 꽃의 형태로 공연에 사용됐는데 조선시대 궁중공연인 진연에는 수파련, 사권화, 목단화 등 다양한 채화로 준화, 지당판, 보검 등을 만들어 공연장을 꾸몄으니 이는 무대장치에 해당하는 것이고 학무의 학연화대, 가인전목단의 목단화준, 헌천도의 헌천화병 등은 무용장치에, 진화와 반화에 쓰이는 채화는 무대소품에 해당하고 진연참가자 모두가 머리에 종이꽃을 꽂았으니 이는 장신구에 해당한다.
또한 종이를 빼놓고 한국의 무속공연을 묘사하기 어렵다. 손에 드는 지전은 물론이고 굿상과 굿당의 장식에도 종이가 사용된다. 무당들은 굿을 위해 그들 스스로 종이로 무구와 장식을 만든다. 한지에 물을 들이고 말려서 꼬고 접고 오리고 붙이고…. 그 '꽃일'에는 열흘에서 보름 정도의 수고와 정성이 들어간다. 그 일부터가 굿인 셈이다. 그들의 종이공예는 높은 수준의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다. 서울굿의 무화 수파련, 동해안굿의 용선과 탑등, 충청도 앉은굿의 설위설경 등이 대표적이다. 종이 무구와 무대장치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하나의 퍼포먼스를 위해 모든 정성을 기울여 만들지만 현실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해당 퍼포먼스가 끝나면 그것들의 수명도 끝난다. 불에 태워져 재로 돌아가는 종이 무구의 일회성은 공연용 무대장치의 속성과 닮았다.
종이를 모티브로 만든 두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종이꽃밭-두할망본풀이'와 '만신-페이퍼샤먼'. 둘 다 제목에 종이가 들어간다. '종이꽃밭-두할망본풀이'는 출생을 주관하는 삼신할미의 유래에 관한 제주신화를 소재로 판소리아지트놀애박스가 만든 박인혜 연출의 판소리극이다. 지난해 국립극장에서 선보인 뒤 2024년 공연예술유통작품으로 선정돼 6월14일 경기 수원을 시작으로 전국 8개 지역에서 업그레이드판이 무대에 오른다. '만신-페이퍼샤먼'은 국립창극단이 박칼린 연출로 6월26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한다. 세계 각지의 무당이 노예선 침몰 해역, 인디언 보호구역, 한국의 비무장지대, 아마존 열대우림 등 온 지구의 상처 난 곳을 돌아다니며 치유를 위해 힘을 모으는 내용이다. 두 여성연출가의 종이공연이 궁금하다.(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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