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진 신고는 4%… 실제 파업 병원은 15%
18일 서울 마포구에 사는 A(40)씨는 아침부터 문 연 소아과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20개월 아들의 열이 39도까지 올랐는데, 주변 소아과 5곳 모두 휴진이었다. 진료 중인 옆 동네 소아과 한 곳을 겨우 찾았지만, 환아가 몰리면서 오전 진료가 불가능했다. 그는 “의사들이 휴진하더라도 아픈 아이는 돌봐야 하는 것 아니냐.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경기 수원에서 환자가 많은 곳 중 하나로 꼽히는 한 소아청소년과도 입구에 ‘병원 사정으로 휴진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를 붙였다. 지역 맘카페에선 ‘휴진 병원 리스트’와 함께 “환자를 볼모로 뭐 하는 짓이냐” “불매운동 해야 한다” 등 비판 댓글이 쏟아졌다.
부산 강서구의 한 산부인과도 휴진해 산모들이 불편을 겪었다. B씨는 “오늘 가야 하는데, 갑자기 휴진이라니 당황스럽다”고 했다. 정부의 업무 개시 명령을 피해 아침 일찍 잠시 환자를 받는 ‘꼼수 휴진’ ‘반차 휴진’도 잇따랐다. 오전 11시쯤 서울 영등포구 한 내과를 찾은 C씨는 병원 입구에 붙은 ‘휴진’ 문구를 보고 “혈압약 받아야 하는데, 벌써 문을 닫으면 어떡하느냐”고 했다. 휴진한 병의원은 비판 여론을 의식해 휴진 사유를 언급하지 않거나 ‘개인 사정’ ‘전기·수도 공사’ ‘병원 청소’라고 써 붙여 놓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주도로 의사들이 역대 네 번째 총파업(집단 휴진)에 나선 이날 동네 소아청소년과 등 일부 병의원이 문을 닫으면서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다만 전국 휴진율은 14.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8월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의협이 벌인 총파업 첫날 휴진율(32.6%)의 절반이 채 안 됐다. 이번 집단 휴진 사전 신고율은 4.0%였다.
전날부터 일부 교수가 휴진에 들어간 서울대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도 전반적으로 휴진 참여 규모가 크지 않았다. 서울대병원은 1주일 전인 11일 대비 외래 진료가 25%, 수술은 16% 감소한 수준이었다. 전날보다는 외래 진료가 16%, 수술은 12% 늘었다. 서울성모병원은 이날 외래 진료를 보는 교수 360여 명 중 10%가량이 휴진했다. 서울성모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은 “수술 건수가 일주일 전 대비 거의 변동이 없다”고 했고, 고대안암병원도 “수술 건수는 조금 줄었지만 외래 진료는 평상시와 비슷하다”고 했다. 다만 서울아산병원은 이날 수술 118건이 이뤄져 최근 일평균 수술 건수(150~180건)와 비교해 20~34% 감소했다. 울산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아산병원) 전신 마취 수술은 72건으로, 일주일 전(11일) 141건 대비 49% 줄었다”고 했다.
지방 대학병원은 휴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전남대병원은 이날 진료가 예정된 교수 87명 중 26명(29.9%)이 휴진했고, 조선대병원은 교수 62명 중 24명(38.7%)이 진료를 중단했다. 경상국립대병원은 교수 20여명이 연가를 내고 하루 휴진했다. 충남대병원도 전문의 263명 중 54명(20.5%)이 연가를 내고 병원에 나오지 않았다. 울산대병원은 예정된 외래 진료 일정 103건 중 31건(30.1%)이 연기됐다. 각 병원은 “미리 일정 변경 등 조치를 해 진료에 차질은 없었다”고 했다.
이날 휴진한 개원의와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생과 학부모 등 1만2000여 명(경찰 추산)은 서울 여의도에 모여 ‘의료 농단 저지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의료 농단, 교육 농단, 필수 의료 붕괴된다’ ‘독단적인 갑질 정부, 한국 의료 무너진다’ ‘정부가 죽인 의료, 의사들이 살려 낸다’고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고 “허울뿐인 의료 개혁, 한국 의료 말살한다” 등 구호를 외쳤다. 김교웅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정부의 불통, 오만을 이제는 우리가 나서서 정신 차리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한 의대생 부모는 “정부가 2000명을 증원한다며 아이들을 악마화하는 동안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며 “제대로 된 학습권을 보장받고 실력 있는 의사가 되려는 것이 욕심이냐. 더 이상 아이들의 꿈을 짓밟지 말라”고 했다.
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27일부터 무기한 휴진, 서울아산병원 교수들이 다음 달 4일부터 일주일 휴진에 들어가는 데 이어 의협도 이날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예고했다. 삼성서울병원·서울성모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도 현재 추가 휴진을 논의 중인 만큼 향후 의료 공백은 더 커질 전망이다. 공공의료기관인 국립암센터 전문의들도 전면 휴진을 고려할 수 있다는 성명을 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이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내팽개치고 불법 행동을 하는 의사들을 정부는 법대로 처리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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