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배급은 릴레이 마지막 주자, 명확한 콘셉트가 ‘힘’

백수진 기자 2024. 6. 1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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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콘텐츠 승부사들] [26] 해외 배급사 ‘화인컷’ 서영주 대표
서영주 화인컷 대표는 “매년 영화제의 슬로건이 무엇인지, 집행위원장·심사위원장이 누구냐에 따라 출품 전략도 달라진다. 영화의 구질에 맞는 전략을 짜는 게 배급사의 일”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송강호 주연의 ‘반칙왕’(2000)을 리메이크한 영화가 개봉했다. 재작년 인도네시아에서 개봉한 ‘7번방의 선물’(2013) 리메이크판은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인도네시아 역대 박스오피스 5위까지 올랐다. 해외 배급사 화인컷의 서영주(55) 대표는 자신의 일을 릴레이경주의 마지막 주자에 빗댔다. 국내 극장 개봉은 그 출발선에 불과하다. “해외에선 30년 전의 한국 영화가 아직도 팔리고 있어요. 예전엔 미국·일본만 바라봤다면 요즘은 인도·튀르키예·아랍 시장까지 다양해졌죠.”

사우디 아라비아판 '반칙왕' 포스터. /복스

서 대표는 한국 영화를 해외에 배급·수출하기 시작한 1세대다. ‘올드보이’‘괴물’'오아시스’'곡성’ 등 셀 수 없이 많은 한국 영화가 그의 손을 거쳐 해외로 나갔다. 2003년 이탈리아 밀라노 마켓에서 열린 ‘올드보이’ 시사회는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영화제에선 바이어들을 메뚜기라고 불러요. 초반 15분만 보고 아니다 싶으면 우르르 나가 버리거든요. ‘올드보이’도 중간에 몇 명이 나오길래 붙잡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극장 안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서 숨 쉬러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끝나고도 삼삼오오 모여서 한참 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나누는 걸 보고 ‘이건 되겠다’ 느낌이 왔죠.”

미국에서 리메이크한 영화 '올드보이' 포스터 /필름디스트릭트

1997년부터 일신창업투자의 해외팀에서 일하다 2000년 한국 영화의 해외 수출 대행사인 씨네클릭아시아(지금의 화인컷)를 설립했다. 잘나가던 홍콩·일본 영화와 달리 한국 영화는 ‘아시아 영화’로 묶여서 소개되던 시절이었다.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자 맨땅에 헤딩으로 세계 각국 바이어들이 묵는 숙소를 찾아가 방마다 전단을 돌렸다. “지금이야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지만, 그때는 영화를 소개하는 편지를 쓰고 전단을 끼워서 돌렸죠. 바이어들이 모인 라운지에서 누군지도 모르고 명함을 뿌리기도 하고요.”

리메이크 판권 수출 붐을 이끈 것도 화인컷이었다. 2001년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할리우드 제작사 미라맥스와 110만 달러에 ‘조폭 마누라’ 리메이크 계약을 맺었다. 그 뒤엔 미국 드림웍스에 ‘장화, 홍련’ 리메이크 판권을 당시 아시아 사상 최고가인 200만달러에 팔며 연달아 대형 계약을 성공시켰다. “지금은 언어권별로 쪼개서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할 수 있고, VOD·IPTV·OTT처럼 영화를 보는 플랫폼도 많아졌죠. 한 영화가 뻗어나갈 방법이 다양해졌기 때문에, 국내 관객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넓게 보고 영화를 만들어야 해요.”

'장화, 홍련’을 리메이크한 미국 영화 ‘언인바이티드’ /드림웍스

국내에선 2년 연속 칸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 실패로 우려가 나오는 상황. 서 대표는 “지금 한국에서 어떤 영화들이 만들어지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 지원금을 끌어서 만드는 10억 이하 저예산 영화 또는 100억 넘게 들여 천만 관객을 노리는 대형 영화로 양극화돼 있잖아요. 칸 영화제에 갈 수 있는 영화는 그 사이, 30억~40억원쯤 드는 중·저예산 영화라고 봐요. 상업적으로는 실패할 수 있다는 각오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경쟁 부문에 진출할 수 있는 거죠.”

2014년엔 할리우드를 본떠 국내 최초로 시나리오 작가 에이전시를 설립하고, 프랑스·아르헨티나와 합작하는 등 영화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최근엔 층간 소음을 소재로 한 호러 영화 ‘노이즈’로 프랑스·러시아·태국 등 69국과 배급 계약을 맺었다. 제작할 때는 “확장 가능성이 있는 영화, 콘셉트가 명확한 영화”를 중요시한다. “층간 소음 문제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갈등이다 보니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 문의가 오고 있어요. 사운드가 중요하기 때문에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로 마케팅하기도 좋고요.”

이선빈 주연의 영화 '노이즈' 포스터. /화인컷

팬데믹 이후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극장용 영화’에 대한 고민이 깊다. “한국 영화를 많이 사가던 회사들이 극장 배급을 주저하는 걸 보고 굉장히 우려스러웠어요. OTT에서 성공한 한국 콘텐츠가 많지만, 극장은 침체돼 있다 보니 해외에서도 ‘한국 영화는 OTT용’이라는 편견이 생기고 있대요. 비주얼로든 사운드로든 ‘극장에서 봐야 하는 영화’임을 증명하는 게 시급한 과제죠.”

☞서영주

2000년부터 해외 배급사 화인컷(구 씨네클릭아시아)을 설립해 ‘올드보이’ ‘괴물’ ‘오아시스’ ‘곡성’ 등 수많은 한국 영화를 외국에 알렸다. ‘조폭 마누라’로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하고, ‘반칙왕’ ‘장화, 홍련’ ‘추격자’ ‘신세계’ 등의 리메이크 계약을 성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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