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국회서 또 ‘돌려차기’당한 피해자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가명·28)씨는 지난 총선 때 정치권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너무 싫다”며 거절했다고 말했다. 범죄 피해자들 돕는 데 인생을 바치겠다길래 “국회의원이 되면 관련 입법도 할 수 있는데 왜 거절했냐”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싸우는 게 싫달까. 무엇보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당론을 따라야 한다는 게 싫다.”
김씨가 말한 그 ‘너무 싫은’ 상황은 총선 한 달여 후 바로 닥쳐왔다. 21대 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8일, 여야가 채 상병 특검을 놓고 벌인 정쟁에 묻혀 김씨가 지난해 국감서 눈물로 호소해 국무회의를 통과시킨 피해자 재판 기록 열람·등사권 확대를 위한 법 개정안 등이 폐기됐다. 다음 날 김씨는 소셜미디어에 적었다. “좀 많이 역하네요. 여당도 야당도 똑같아요. 제 살길 챙기겠다고 싸움 부추기고 자리 이탈하는 사이에 피해자 열람·등사권, 스토킹 처벌법, 제시카법, 가석방 없는 무기형, 범죄 피해자 구조금 지급 범위 확대, 아동 학대 살해미수죄, 구하라법, 판사·검사 정원법이 날아갔습니다.”
“국회에서 다시 돌려차기당한 것 같아요.” 최근 통화에서 그는 말했다. “사건 이후 2년 가까이 기다려 얻은 기회가 정당 싸움으로 끝나 처참하다. 국회의원은 배 부른 이들이라, 역시 자기들은 범죄 피해자가 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구나, 싶다. 이제 누가 가해자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의원들이 피해자 권리에 무심한 것이 자신들은 피해자가 될 리 없다 여겨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지난 1월 참여연대 집계에 따르면, 21대 의원 중 3분의 1가량이 수사받거나 기소돼 재판받는 피의자나 피고인이었다. 그래서 당신들이 피해자 권리에 소극적이라고 비판한다면, ‘피의자 의원’들은 뭐라고 반박할까.
이번 국회는 또 어떤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민주당은 피의자가 재판에 불복해 판사를 고발할 수 있게 하는 ‘법 왜곡죄’ 신설을 검토 중이다. 검사 기피제 도입, 법관 선출제 이야기도 나온다. 헌법 제84조 대통령 불소추 특권 해석을 놓고 연일 시끄럽다. 피고인 방어권 강화를 위한 입법과 법 해석에 전력투구 중이니, 대척점인 피해자 관련 법안엔 소홀하다 비판한다면, 또 뭐라 변명할 것인가.
이 와중에 김씨는 꿋꿋이 제 할 일을 한다. 피해자 교육 플랫폼을 만들고, 피해자들과 함께 재판을 방청한다. “자율적으로 뭔가를 해야지, 그들에게 기댔다간 또 이용당할 것 같아서.”
국회가 ‘범죄자들의 도피처’라는 오명을 벗고 싶다면, 김씨의 말에 귀 기울이길 바란다. “피해자들은 최대한의 지원이 아닌 최소한의 보호를 받길 원하는데 법원도, 수사기관도 방해물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아직도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생각한다. 피해자 보호가 국가의 책무인데, 그 혜택을 받지 못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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