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사자 ‘전투’ 중에 수사자 짝짓기 시도...동물 본능 보여준 사진 한 장 [수요동물원]
짝짓기 시도하는 수사자
인간의 기준으로는 기괴하지만
종족-살상 본능으로 살아가는 짐승의 단면
생태 사진이란게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야생에서 동물들이 본능이 빛을 발하는 찰나를 포착한 일종의 작품 사진이예요. 여러 단체에서 올해의 생태사진이라는 제목의 콘테스트를 열어 응모작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할 정도로 가독성이 높은 사진들이 많아요. 포식자와 먹잇감이 맞닥뜨리며 생과 사의 순간이 엇갈리는 순간, 종족 번식의 본능으로 뒤엉키려는 암수의 모습, 이제 막 세상의 품에 안겨 잔혹한 생존경쟁의 출발선에 선 새끼 짐승들 등의 순간을 생생하게 담은 사진을 보는 순간 이 살벌한 세상에서 이성과 윤리와 지능으로 무장한 인간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야생의 본능이 생생히 담긴 장면이 카메라 렌즈에 기록되고 있을 터입니다. 본능에 의해 충실히 움직일 따름인 짐승들의 생태 포착 장면은 때로는 인간에게 기괴함과 낯선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바로 아래처럼요.
정말로 괴상한 구도의 사진입니다. 암사자의 강력한 턱에 표범이 목덜미가 물려있어요. 살기등등했던 표범의 눈이 초췌헤져있지만 아직 숨은 붙어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놈의 목덜미를 파고들어 혈맥을 뚫었을 암사자의 송곳니를 생각하면 곧 혼이 빠져나갈 것으로 보입니다. 먹잇감을 두고 다투는 사바나의 킬러들간에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살상 현장입니다. 그런데 킬러 본능을 발휘한 암사자의 뒤로 갈기가 성성한 수사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살상의 본능과 번식의 본능이 동시에 발현되어있는 기괴한 구도 때문에 어쩌면 교묘하게 위장한 합성사진으로 착각할 수도 있겠어요. 이 장면을 담은 1분 33초 짜리 동영상은 실제 야생에서 벌어진 상황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파리 사진가 타비사니 부텔레지(Thabisani Buthelezi)가 아프리카 말라 말라 야생동물 보호구역(Mala mala game reserve)에서 촬영해 레이티스트 사이팅스(Latest Sightings)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입니다.
매복 사냥의 명수 표범은 이날 지지리도 운이 없었습니다. 풀숲에서 맞딱드린 건 주식 임팔라가 아니라 사자였거든요. 고양잇과라는 큰 집안에서 육촌지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자와 표범은 불구대천 지간입니다. 덩치도 세고, 무리 생활을 하는 사자가 압도적 우위를 지키고 있으니 사바나의 제왕으로 아량을 베풀만도 하지만 터럭만큼의 배려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사는 사바나인걸요. 이 같은 쟁투의 관계는 사바나의 사냥꾼들 사이에 복잡다단하게 전개됩니다. 사자가 하이에나를 죽이고, 하이에나는 표범을 물어뜯고, 표범은 치타를 처단하고, 치타는 재칼을 습격하죠. 그 재칼은 늙고 병든 사자를 공략합니다. 이 같은 육식동물간의 갈등 구조는 어쩌면 육식·초식동물의 싸움보다 더 한 지옥도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번 상황도 그 연장선상입니다. 가련한 표범을 포위한 암사자들의 무자비한 살육이 시작됐어요. 물소·얼룩말·임팔라를 처단하듯 단번에 급소 목덜미를 잡아챕니다. 끄윽... 끅... 표범의 숨넘어가는 소리가 모니터를 뚫고 귓가를 맴도는듯 합니다. 집채만한 사냥감을 물고 나무를 휘리릭 올라가던 강력한 턱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암사자로서도 한번 물기 시작한 이상 놓아줄 수 없습니다. 놓치는 순간 상상이상의 반격을 당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 죽이려는 맹수와 죽으려는 맹수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이 현장을 칠렐레 팔렐레 서성이던 수사자가 갑자기 암컷의 뒤로 향하더니... 암사자를 가운데 두고 수사자와 표범의 눈이 번뜩이며 마주합니다. 죽어가는 표범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더욱 어처구니없었을테죠. 종족 번식의 본능과 살상의 본능이 접점을 이루는 순간이죠.
수사자는 다급했을 것입니다. 사자의 왕조는 투쟁의 연속입니다. 우두머리가 바뀌는 순간, 무리에는 피바람이 붑니다. 자신의 혈통으로 채우기 위해 축출된 수컷의 피를 이어받은 새끼들은 모조리 살해되거든요. 젖을 물리고, 돌볼 새끼들이 사라져야 암컷이 번식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숫사자들이 허구한날 흘레붙기에 몰두하는 색욕의 화신처럼 그려지는 것도, 언제 떨려날지 모르는 불안한 신세에서 비롯된 습성으로 볼 수 있을 테지요.
암사자에 의해 혼이 달아나 아름다운 털가죽으로 남게 된 표범은 십중팔구 뜯어먹히지 않고 버려질 공산이 큽니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사자가 잡아먹을 목적으로 다른 육식동물을 사냥하는 경우는 좀처럼 없거든요. 어쩌면 암사자는 장차 태어날 수 있는 새끼의 안위를 위해서도 본능적으로 표범의 목숨을 앗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새끼 사자의 가장 무서운 적 중의 하나가 표범이거든요. 아장 아장 기어다니는 고양이만한 새끼 사자들을 특유의 매복 공격으로 급습해 나무위로 재빠르게 올라갑니다. 나무 위에서 표범 이빨에 물려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새끼 사자를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는 암사자의 모습이 드물게 포착되거든요. 이 경우도 대개는 천적의 조기 제거 차원에서 벌어지는 상황이지만, 종종 새끼사자가 표범의 한끼 식사가 되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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