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60] 오물 풍선과 자유의 씨앗
사람들은 전부 자신이 죽을 때 뭔가를 남긴단다. 아이나 책, 그림, 집, 벽이나 신발 한 켤레, 또는 잘 가꾼 정원 같은 것을 말이야. 네 손으로 네 방식대로 뭔가를 만졌다면, 죽어서 네 영혼은 어디론가 가지만 사람들이 네가 심고 가꾼 나무나 꽃을 볼 때 너는 거기 있는 거란다. 그저 잔디를 깎는 사람과 정원을 가꾸는 사람과의 차이란 바로 매만지는 데 있지. 잔디를 깎는 사람의 마음은 정원에 있지 않지만, 정원을 가꾸는 사람은 언제나 그곳에 있단다.
- 레이 브래드버리 ‘화씨 451′ 중에서
한 탈북 청년이 남한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고 한다. 무심히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 나갔는데 왜 음식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왔냐며 친구들이 웃었다. 양파 껍질과 파뿌리까지 삶아 먹던 북한에서는 ‘음식 쓰레기’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그는 창피하기보다는 음식 쓰레기가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나라에서 살게 된 것이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한국 노래, 드라마는 물론 미국, 홍콩, 대만의 영화까지 즐기며 자랐다. 들켜도 뇌물 몇백 달러만 주면 무사했다. 여가엔 기타를 치며 친구들과 함께 한국 드라마 주제가를 불렀고, 친·인척이 남한에서 보내준 선물을 받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팔아 돈을 벌었다. 이렇게 자란 북한의 20~30대를 ‘MG세대(마켓 제너레이션)’ 즉 ‘장마당 세대’라고 한다.
대한민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현재 3만5000여 명, 북한 주민 700명당 1명, 중국과 다른 나라에 체류 중인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70명당 1명이 외부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이 폐쇄적일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개방을 두려워하는 정치 지도부가 닫혀 있을 뿐, 이미 많은 북한 주민과 청년은 깨어있다. 우민화를 위해 모든 책을 불태우는 미래 사회를 그린 소설 속 주인공처럼, 지식과 자유를 향한 인간의 열망은 억압하면 할수록 더 맹렬히 솟구쳐 오르는 법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화장실 스티커를 본 적 없을 북한 수뇌부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물 풍선이 표현의 자유라고 큰소리친다. 야당도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 재개를 반대하고 있지만 남풍이 부는 계절, 자유의 씨앗을 북한에 뿌리기 딱 좋은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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