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25] 면을 칠 것인가 말 것인가
면을 좋아한다. 그래서 매일 당뇨약을 삼킨다. 탄수화물을 줄여야 한다. 탄수화물은 3대 영양소 중 가장 중독적이다. 가장 중독적인 것이 가장 위험하다. 쌀은 끊었다. 빨간 김치찌개 국물이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배는 아름다움도 잊기로 했다. 두 색이 주는 대비 효과는 극적이다. 한국의 모든 좋은 것은 다소 극적이다.
혈당 검사를 했다. 큰 효과는 없었다. 쌀만 끊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면을 끊지 못했다. 기후변화 탓이다. 올해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거라고 한다. 여름이 빨리 왔다. 뜨겁게 왔다. 나는 여름에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다. 차가운 콩국수다.
서울 최고 콩국수는 진주회관이라고 생각한다. 전통 맛집답게 배달을 하지 않는다. 나는 연남동과 이태원을 아우르는 배민 리스트를 갖고 있다. 빠진 것이 콩국수 맛집이었다. 별점 좋은 곳도 묽었다. 콩국수는 목으로 넘길 때 점액질이 느껴지게 진해야 마땅하다. 시행착오를 거쳐 콩국수 맛있는 배달 집을 찾았다. 청년이 한다는 집이다. 요즘은 청년이 뭐든 잘한다.
감탄의 ‘면 치기’를 했다. 콩국이 엉망으로 튀었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 대화가 기억났다. 요즘 젊은이들은 면 치기를 하지 않는단다. 후루룩 소리가 불쾌하기 때문이란다. 나는 둘리 친구 마이콜도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이라 노래하던 시절의 산물이다. 면은 입술로 매우 쳐야 맛있다. 배운 세대다. 슬슬 부아가 치밀었다.
콩국이 마구 튄 식탁을 보며 깨달았다. 새 공공 예절 앞에서 부아가 치미는 것은 진정한 아재가 됐다는 증거였다. 어쩌면 곧 면 치기는 거리에서 한쪽 코를 막고 허공에 콧물을 분사하는 궁극의 아재 행위와 가까워질지도 모른다. 나는 콩국수를 카르보나라처럼 오물오물 입에 넣기 시작했다. 면 치기가 사회적 예절이 아닌 미래에 부끄럽지 않은 늙은이가 되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한 아재에게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후루룩 도약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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