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낡은 상속세제의 틀 다시 세우자
상속세 존속여부 광범위한 의견 수렴 필요
우리나라 상속세 제도는 여러 측면에서 예외적이고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무엇보다 세금 부담이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50%에 이르는 상속세 최고세율은 일본(55%)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다. 어느 민족보다 가족 간 유대관계를 중시하고 자녀에 대한 증여나 상속 동기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이를 중과세하는 점은 독특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최대주주에 대한 할증과세 역시 다른 나라에서는 유사사례를 찾기 힘든 조항이다. 사업용 자산을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상속보다 무겁게 과세하는 것은 경제발전에서 기업의 역할과 기여를 절대적으로 중시하는 다른 주요국 시각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과세방식에서도 자녀가 개별적으로 물려받은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아니고, 부모가 모든 자녀들에 남긴 상속재산 총액을 기준으로 세금을 계산하는 불합리한 방법이 고수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유산취득세 방식이 국제표준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미국, 덴마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유산세 방식이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것은 분명 예외적 현상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상속세 부담을 가중시키는 이러한 기간세제 구성항목들이 사실은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나 합의 과정 없이 과거 어느 시점부터 은연중에 굳혀졌다는 점은 더욱 큰 놀라움을 준다. 현 제도의 틀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혼란이 충분히 극복되지 못한 시기에, 그것도 당시 납세자 수 1500명선에 불과한 상속세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에 일반 국민이 큰 관심을 보이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기억날 만한 이렇다 할 논란이나 논쟁 없이 중요한 세제가 정치적으로 조용히 결정되어 버린 이유다.
어찌 보면 정식으로는 처음이나 다름없는 이번 상속세제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세제의 근본적인 개편을 목표로 큰 틀에서 과세원칙과 기준을 새롭게 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망을 전제로 한 부유세라는 상속세의 부정적인 성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최고세율 수준을 OECD 평균인 30% 미만으로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과세자가 전체 대상자의 5%에 불과하다는 점으로 인해 납세자 의견이 무시돼선 안 되며, 세금을 부담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수의 납세자에게 높은 세부담을 강요하는 조세윤리상 부당하기에 삼가야 한다.
저성장 극복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부상한 구조적 전환기에 기업승계 과정에 대해 할증과세하는 퇴행적 제도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대기업 경영권 승계 자체를 무조건 경원시하고 세제를 통해 통제하기보다는 상법이나 공정거래법을 통해 투명하고 책임 있는 지배구조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업용 자산 승계 목적의 상속지분을 처분하지 않고 장기간 보유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상속세를 전면 감면해 주는 주요국 사례를 적극 구용할 필요가 있다. 세무행정상 준비 조치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진 유산취득세 전환도 더 이상 미룰 명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제도의 취지와 달리 과세 현실에서 나타나는 많은 부작용으로 인해 상속세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자본이득과세로 대체한 나라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참고하여, 중장기적으로는 우리도 상속세 존속 여부에 관해 광범위한 의견 수렴에 나서야 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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