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의어느날] 네 번째 어금니의 출현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왼쪽 볼이 부어 있었다.
"네가 일을 도맡아 하는 동안 너네 팀장은 대체 뭘하는데?" 내가 따지듯 묻자 친구는 한숨을 쉬었다.
"네 번째 큰 어금니가 이제서야 난다니. 그럼 나는 지금껏 어금니 세 개로만 살아온 셈이잖아? 아직도 덜 자랐네, 내가." 친구는 그 말이 마음에 드는지 잠시 멈추었다.
"내가 아직도 덜 자랐네." "한참 덜 자랐지." "아직도 자랄 게 남았었네, 내가." "한참 남았지." 친구가 고요히 웃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 맡은 프로젝트 기한이 너무 짧아 치과는커녕 느긋하게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친구는 이번만 바쁜 게 아니었다. 입사한 이래 그는 다양한 이유로 바빴고 늘 시간에 쫓겼다. 친구네 회사 앞으로 찾아가야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을 수밖에. 나는 친구의 상사를 내심 원망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그토록 많은 일을 떠넘기는 걸 보면 몹시 무능하거나 뻔뻔하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며칠 후 친구는 대뜸 전화를 걸어서는 사랑니가 아니래, 라고 말했다. 야간진료하는 치과가 있어 들어갔더니 의사가 이건 못 뽑는다고 했다는 것이다. “사랑니가 아니라 어금니래.” 나는 어리둥절해져 다시 물었다. 어금니라고? “드물게 어금니가 늦게 나는 사람이 있대. 이 나이에 어금니가 난다니, 애도 아니고.” 친구가 혼잣말하듯 계속 중얼거렸다. “네 번째 큰 어금니가 이제서야 난다니. 그럼 나는 지금껏 어금니 세 개로만 살아온 셈이잖아? 아직도 덜 자랐네, 내가.” 친구는 그 말이 마음에 드는지 잠시 멈추었다. “내가 아직도 덜 자랐네.” “한참 덜 자랐지.” “아직도 자랄 게 남았었네, 내가.” “한참 남았지.” 친구가 고요히 웃었다.
충치가 되지 않도록 관리에 특히 신경쓰라고, 의사가 잇솔질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말도 했다. “어금니도 새로 났는데 이 참에.” 나는 그다음 이어질 친구의 말을 듣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래, 그게 좋겠어.” 친구가 아직 말도 안 끝났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네 번째 어금니만큼이나 뒤늦은, 그러나 더없이 선명한 웃음이었다.
안보윤 소설가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국처럼 결혼·출산 NO”…트럼프 당선 이후 미국서 주목받는 ‘4B 운동’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단독] “초등생들도 이용하는 女탈의실, 성인男들 버젓이”… 난리난 용산초 수영장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송지은이 간병인이냐”…박위 동생 “형수가 ○○해줬다” 축사에 갑론을박
- “홍기야, 제발 가만 있어”…성매매 의혹 최민환 옹호에 팬들 ‘원성’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