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나기 어려운 ‘이중구속’의 수렁[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2024. 6. 1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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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갈승은 atg1012@donga.com

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이름을 들으면 ‘이중구속’ 이론이 떠오릅니다. ‘구속’은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속박함’, 법률에서는 ‘…강제로 일정한 장소에 잡아 가두는 일’을 말합니다. ‘이중구속’은 구속이 두 겹입니다. 정신분열병(현재는 조현병)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소통 방식 연구에는 여전히 유용합니다. ‘이중구속’식 소통은 흔하지만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서 최악의 방식입니다. 의도적으로 시도한다면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이중구속’은 모순과 역설과 근거 없는 믿음이 섞인 사회적 분위기에 뿌리를 내리고 자랍니다. 안부를 묻지 않는다고 엄히 꾸짖어서 막상 전화를 드리니 “어쩐 일이니?”라는 냉담한 반응이 들려오면 ‘이중구속’입니다. ‘양날의 칼’과 같아서 어차피 손을 베입니다. ‘이중구속’은 덫, 함정, 수렁이어서 먹잇감의 마음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합니다. 벗어나지 못하고 양쪽으로 잡아 당겨져서 찢겨 나갈 것 같은 두려움에 떱니다. 도움을 청해도 대체로 ‘양비론(兩非論)’을 마주칩니다. “사리에 어긋나기는 하나 너 역시 잘못했다!”는 질책이 쏟아집니다. 대화를 통해 순리로 풀어야 한다고 타이릅니다. 무난한 말씀들이나 양비론의 본질은 ‘이중구속’의 연장일 뿐입니다. 맞서고 있는 양측이 모두 옳다는 양시론(兩是論)에 비해 양비론에 ‘지혜’가 담긴 듯 보이나 양비론이 힘을 얻을수록 근본적 해결은 더 멀어집니다. 지식과 논리만으로 풀어내는, 현장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공허한 ‘말놀이’로 소멸됩니다.

‘이중구속’에 능숙한 사람은 품은 의도를 선의(善意)로 포장합니다. 낙담을 안겨 떠나보낸 사람에게 돌아오면 용서하고 대접해 준다는 손짓은 얼핏 선의로 보이지만, 자유의사에 따라 행동한 사람을 ‘탈옥범(脫獄犯)’으로 여긴다는 ‘고백’으로 들리고 안 돌아오면 처벌하겠다는 의도가 삐죽 고개를 내민 것도 보입니다. 돌아가면 갇히고 안 돌아가면 벌을 받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나를 지키려면 ‘이중구속’의 늪이 기다리고 있는지, 잠복근무 중인 의도를 찾아내야 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인질들은 풀려나고도 인질범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모순에 빠져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가정 폭력을 당한 피해자 일부는 ‘이중구속’에 사로잡혀 가해자를 감쌉니다. 도저히 못 견디고 떠나면 아이들을 버렸다는 도덕적 비난에 시달립니다. 마음이 흔들려서 돌아가면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고 겁주고 때리는 일이 되풀이됩니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이중구속’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사람들은 옆집 불구경 재미에 자기 집에 불이 번지는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엄마의 가출 사연을 전혀 알려고 하지 않고 배고픔만 호소하는 아이들은? 소명은 자발성에서 나옵니다. 강요할 수 없습니다. 강요된 소명은 빠지면 나오기 힘든 수렁이니 조심해서 피해야 합니다. 혼미한 정신으로 돌아가 봤자 폭력은 반복됩니다. 누구도 가정 폭력으로 가출한 엄마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습니다.

‘이중구속’ 수렁의 역설은 파국이 가까워지면 설계자 역시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백지화하기에는 체면 사납고 비난이 두렵고, 고집하기에는 초래될 결과가 막연히 불안합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입니다. 현실을 인정하기는 고통스러울 겁니다. 되도록 오래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려 하지만 이미 치닫고 있는 파국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고삐를 다시 틀어쥐려고 하지만 제시한 당근이 썩었다고 이미 소문이 나서 소용이 없습니다. 떠나게 만든 후에 복귀 명령과 처분을 남발하면서 애를 썼지만 아직도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까요?

어떤 전문(專門) 분야이든지 다른 직역이 원천적으로 이해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전문인 겁니다. 소신껏 일하도록 선의로 돕거나 적어도 내버려둬야 합니다. “제대로 하기를 명령함!”은 ‘이중구속’의 수렁에 몰아넣는 행위입니다. 모순, 역설, 근거 없는 믿음으로 만든 수렁이어서 원래대로 메워야 겨우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의료 행위는 절대자의 영역이 아니고 확률,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는 인간의 영역입니다. 솔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확률을 따지는 인간의 영역에 절대적인 책임을 강요한다면 ‘방어 진료’가 넘치게 되고 그로 인한 의학적, 경제적, 사회적 피해는 고스란히 모두 우리가 부담하게 될 겁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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