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감자·소고기, 비싸도 너무 비싸”...한은 “꼬인 유통구조 탓”
30여년 전엔 1.2배 높았는데
해 거듭될수록 격차 더 커져
사과·감자 값은 2~3배 비싸
출하·도매·소매 단계 거치며
농산물 가격에 유통비가 절반
“생산성 늘리고 비축 확대를”
18일 한은은 ‘우리나라 물가 수준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최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이 둔화하고 있으나 누적된 물가 상승으로 물가 수준은 크게 오른 상태”라며 “식료품, 의류 등 필수 소비재 가격 수준이 높아 생활비 부담이 크다”고 진단했다.
영국 경제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IU)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의식주(의류·신발·식료품·월세) 물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0보다 55% 높았다. 인터넷비나 외래 진료비는 주요국의 40%선으로 저렴했지만, 사과, 감자를 비롯한 농식품 가격은 2~3배 더 높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 수록 식료품 가격 부담이 누적적으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 한국의 식료품 물가 수준은 OECD 평균의 1.2 배였지만, 지난해 1.6 배로 격차가 확대됐다. 같은 기간 공공요금 수준은 OECD 평균의 0.9 배에서 0.7 배로 낮아진 것과는 확연히 다른 흐름이다.
한은은 농산물 가격 부담이 지속되는 원인으로 영세한 영농 규모로 인한 낮은 생산성과 높은 유통 비용을 꼽았다. 실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출하, 도매, 소매단계를 거치며 불어난 농산물 유통비용은 전체 제품 가격의 49.7%에 달했다. 1999년에는 39%였다.
일부 과일의 경우 수입 공급 창구가 막혀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현재 정부는 까다로운 검역 절차를 통해 사과를 비롯한 주력 과일 수입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농가를 의식해 이 같은 검역 절차를 두면서 과일 가격이 올라도 수입을 통해 가격을 내릴 방법이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은은 기후 변화도 장기 농산물 물가 변동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기후 충격으로 기온이 1℃ 오르면 농산물 가격 상승률은 0.4~0.5%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또 월간 평균기온이 장기평균(1973~2023년)보다 1℃ 오르는 경우 1년 후 농산물 가격은 2%, 전체 소비자물가 수준은 0.7% 상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고물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재정투입을 통한 단기 대응보다는 구조적인 측면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향후 고령화로 재정여력은 줄어드는 반면 기후변화로 생활비 부담은 늘어날 가능성이 커 재정투입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농산물 유통구조 개편 필요성에 공감대를 표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농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공급 안정이 핵심”이라며 “정부 차원의 수급 관측 능력을 높이고, 스마트팜이나 자본 집약적인 농업을 활성화해 공급 안정을 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온난화로 인해 과실 공급면적이 줄어드는 데 따라 설비 투자를 지원을 더 강화해 공급을 늘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농가 생산비용 중 상당 부분이 외국인 인력 고용에 들어가는 현실을 감안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 생산 단가 인하를 노리는 방법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쌀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자급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사과는 그렇지 않다”며 “검역을 완화해 수입을 개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수입선 확보를 비롯한 공급채널 다양화로 가격안정을 이끌어낸 사례는 많다. 칠례FTA이후 수입과일 품목과 물량이 늘면서 과일가격 변동성이 뚜렷하게 축소됐다. 한은은 과일수입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과일값이 대체로 낮은 모습을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다만 순병민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농산물 수입 개방은 단기간 내 단행하기 어렵다”며 “수급 전망 정확도를 높이면서 특정 품목에 대해 비축을 통해 가격 안정화 능력을 키우는게 현실적”이라고 역설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생활비 수준을 낮추기 위해 어떤 구조개선이 필요한지 고민해볼 때”라며 “어떤 정책을 취하고, 어떤 속도로 정책을 변화시킬지는 정부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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