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거래가 시작됐다… 푸틴 “북한 투쟁 지지”[북러정상회담]
노동신문 기고문 통해 '반미 연대' 노골화
군사·경제·인적 교류 등 전방위 협력 강화 시사
19일 회담서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할 듯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8일 평양을 찾았다. 김정일 체제이던 2000년 7월 방북 이후 24년 만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9월 러시아로 건너간 데 이어 9개월 만의 재회다.
북한을 관리하면서 선물 보따리를 안겨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함께 맞서려는 푸틴 대통령의 속셈이 담겼다. 32세 차이로 세대가 전혀 다른 불량국가 정상들이 위협적인 브로맨스를 뽐내며 악마의 거래에 나섰다. 국제사회는 한반도와 동북아에 미칠 파장을 주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북한 노동신문에 실린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는 침략적 원수(미국)와의 대결에서 권리를 지키려는 투쟁을 벌이고 있는 북한을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극히 이례적으로 북한을 방문한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지난해 김 위원장과 만나 "러시아는 서두르지 않고 북한과 모든 군사·기술 협력을 논의할 것"이라던 발언보다 강도가 세졌다.
그러면서 "우리는 공동의 노력으로 쌍무적 협조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올려세우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군사 △경제 △인적 교류 등 전방위적으로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군사협력의 경우, 북한과 소련은 1961년 '조소 우호 협조 및 상호원조에 관한 조약'에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을 명시한 전례가 있다. 한미동맹과 유사하다. 조약은 한러 수교 이후인 1996년 폐기됐고, 소련 해체 이후 2000년 체결한 '북러 우호친선 및 협력조약'에는 안보지원 조항이 빠졌다. 하지만 일정 수준 복원될 전망이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보좌관은 이날 "포괄적전략동반자협정을 체결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는데, 동맹보다 한 단계 낮지만 협정에 연합훈련이나 무기체계 통합을 추진하는 내용이 담길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1945년 관동군을 함께 격멸시킨 소련 군인과 조선 애국자들의 활약까지 소환하며 북한과의 미래 군사협력을 강조했다. △소련이 세계 최초로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조국해방전쟁(6·25전쟁)의 어려운 시기에 소련은 북한의 투쟁을 지원했고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지했다고 장황하게 열거했다. 그러면서 "이전처럼 오늘날 러시아와 북한은 다방면적인 동반자 관계를 적극 발전시켜나가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에 대해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수립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했고, "새로운 제재들로 우리 경제의 맥을 뽑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상호) 결제체계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숨통이 트일 수 있도록 앞장서 제재의 구멍을 내겠다는 엄포나 다름없다. 아울러 북한과의 인적 교류를 빙자하며 유엔 안보리가 금지한 북한 노동자 해외 송출을 사실상 지원하겠다고 맞섰다.
북러 정상회담은 19일 열린다. 장소는 백화원 영빈관이 유력하다. 과거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묵었던 숙소이기도 하다. 러시아 크렘린궁이 밝힌 일정에 따르면 양 정상은 공식회담 외에 산책을 하며 중요한 안건을 은밀하게 논의할 예정이다.
'산책 회담'은 김 위원장이 즐겨 쓰는 방식이다. 2018년 4월 문 전 대통령과 남북정상회담 당시 판문점 일대 도보다리를 함께 거닐었고, 같은 해 5월에는 중국 다롄의 해안가를 시진핑 주석과 걸어가며 중요 사안을 논의했다. 한 달 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의 싱가포르회담에서도 호텔에서 1분간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눴다. 우샤코프 크렘린궁 보좌관은 "산책 중에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이 끝나면 푸틴 대통령은 물론 김 위원장도 기자회견에 응할 예정이다. 문서화된 '선언'이나 '조약'이 발표 형식으로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지난해 북러정상회담 때는 공동기자회견이나 공동선언 발표가 없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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