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라이·브루스 레...이소룡만큼 시대 풍미한 ‘짝퉁들’

신정선 기자 2024. 6. 1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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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이소룡-들'에 등장하는 가짜 이소룡들. 위에서부터 브루스 레(미얀마), 브루스 라이(대만), 드래곤 리(한국). /에이디지컴퍼니

배우 이소룡(브루스 리)은 1973년 7월 20일 돌연 숨졌다. 인기 절정이던 그의 나이 불과 서른 셋. 복용약 부작용으로 인한 뇌부종 탓이라는 공식 발표에도 불구하고 삼합회 암살설, 복상사설, 가문의 저주설 등 온갖 설이 끊이지 않았다. 그 틈을 타고 각국에서 이소룡들이 나타났다. 브루스 라이(대만), 브루스 레(미얀마), 드래곤 리(한국), 브루스 량(홍콩), 심지어 흑인이 분장한 블랙 드래곤(미국)도 있었다. 모두 검정 선글라스에 더벅머리 가발을 쓴 아류 배우였다. 그들은 오락과 환상을 파는 영화 제작자들에 의해 기용돼 이소룡 사후 10여년간 200편의 아류작을 찍었다.

다큐멘터리 ‘이소룡-들’(19일 개봉)은 절정의 스타를 잃은 대중의 허기를 파고든 가짜 배우들의 이야기다. 이소룡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이소룡’이 아니라 ‘들’이다. 감독 데이비드 그레고리 등 제작진은 이젠 일흔이 넘은 가짜 이소룡들과 제작자를 찾아가 인터뷰했다. 지식재산권 개념이 희미하던 시절, 그들은 이소룡의 ‘신작’을 갈구하던 관객의 눈을 속여보려 괴작을 양산했다. 주로 미국과 프랑스 시장에서 먹혔다.

아류의 연기라고 마냥 만만하진 않았다. 이소룡 같은 전완근을 갖기 위해 하루 6시간 훈련했고, 쌍절곤을 변형한 신형 무기도 개발했다. 장르는 코미디와 판타지로 변질됐다. 콜로세움에서 마피아와 싸우고, 스파이더맨과 대결하고, 뽀빠이·제임스 본드와 동시에 겨룬 이소룡도 있었다. 한 아류 배우는 “내 맘속으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분을 추모하는 뜻에서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이소룡-들’에 담긴 가짜 이소룡들의 어처구니 없는 액션엔 절로 웃음이 터진다. 대놓고 가짜인 배우들이 여보란 듯 ‘아뵤~’를 외칠 땐 ‘시대의 아이콘’ 이소룡이 더욱 그리워진다. 대중이 왜 그토록 그를 원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이 없다는 점은 크게 아쉽다. 1972년 리처드 닉슨의 방중(訪中) 등 정치 사회 격변만 짚어줬어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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