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SK 주식 원천자금’ 출처와 성격…숫자엔 큰 의미 없다
법원, ‘판결문 숫자 정정’ 관심 커지자 이례적으로 설명 자료
“경영 중간단계 사실 바로잡은 것…결과 흔들 근거는 못돼”
최 회장은 ‘승계상속형’ 주장…대법 판결 가를 관건 될 듯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을 심리한 항소심 재판부가 SK 주식가치 산정의 숫자 오류를 정정하면서도 재산분할 비율 등 재판 결과는 그대로 유지해 최 회장 측이 반발하고 있다. 최 회장 측 불만은 “재산분할의 기준이 된 주식가치 산정 오류가 정정돼 재산 기여도가 달라졌는데도 재산분할 비율·액수가 그대로 유지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18일 이례적으로 설명자료를 내면서 “중간 단계의 사실관계를 정정한 것이라 결과를 흔들 정도는 아니다”라고 재반박에 나섰다.
논란의 핵심은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할 것인지다. 재산을 선대회장에게 물려받았어도 주식 가치 증대 과정에서 최 회장의 역할이 크고 배우자의 기여가 인정된다면 ‘공동재산’이어서 노 관장과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전날 정정한 ‘주식가치 산정 숫자 오류’는 최 회장이 1994년 현재 SK(주)의 전신인 대한텔레콤 주식을 인수한 원천이 된 자금 2억8000만원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나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최 회장 명의 계좌거래 등을 따져 최 회장이 고 최종현 선대회장 돈만으로 SK 주식을 매입한 것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에 재판부는 3조원 가치로 평가된 SK 주식의 원천 자금이 상속·증여받은 ‘특유재산’이라는 최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한발 더 나아가 주식가치를 따져 최 회장의 기여도가 컸다는 판단도 추가했다. 1998년 5월 대한텔레콤 주식을 주당 100원으로 계산해 2009년 11월 기업가치를 355배 올렸다고 봤다.
그런데 최 회장 측은 액면분할 등을 감안하면 주당 100원이 아니라 1000원으로 봐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판부가 이를 수용해 바로잡으면서 변수가 발생했다. 최 회장의 기여분이 355배에서 35.6배로 10분의 1로 낮아졌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은 최 회장의 기여분이 선대회장(125배)에 비해 낮다며 최 회장은 ‘자수성가형’이 아니라 ‘승계상속형’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노 관장에게 주식을 분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자수성가형과 승계상속형을 임의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근거가 없고, 최소한 최 전 회장이 사망한 1998년부터는 최 회장이 자수성가형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의 재임기간인 올해까지 포함해 보면 기업가치가 약 160배 늘어 선대회장 125배와 비교해 최 회장의 기여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고 했다.
최 회장 측은 숫자 오류 정정에 따라 결과도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 측 변호인단은 “오류 정정 전에는 최 회장의 기여도를 355배로 판단했다가 160배로 변경했는데 왜 판결 결과에 영향이 없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숫자 오류 정정은 최 회장의 경영활동 ‘중간단계’에 대한 사실관계를 바로잡은 것으로 재판 결과를 흔들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재차 밝혔다. 이어 최 회장이 경영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만큼 올해까지 재임기간 26년을 모두 따져 기여분을 산출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원천이 된 자금을 특유재산으로 보지 않은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숫자 오류 정정을 두고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밝혔지만, 최 회장 측은 ‘치명적 오류’라며 맞서고 있다. 판결 오류를 바로잡는 ‘경정’은 종종 나온다. 당사자 신청이나 문제 제기 없이 법원 직권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오류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각하면 파기환송 사유에 해당한다.
경정된 항소심 판결은 이제 대법원에서 다투게 됐다. 일각에선 대법원에서 전제가 달라진 것의 오류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종 결론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가정법원 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는 “중요한 것은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이 선대회장으로 흘러갔고, 회사 인수 자금에 쓰였다는 것”이라며 “분할 대상 재산 계산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물론 최 회장 측은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자금을 받았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이동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 관장에게 인정된 재산분할 35%는 비자금을 포함해 노 관장의 가사노동 등 여러 기여를 합쳐서 산출한 비율”이라며 “계산상 오류가 있어도 최 회장의 재산을 특유재산으로 보지 않은 핵심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 결과가 달라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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