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구시대 에너지에 집착…진짜 머리띠 두르고 싸워야 할 판”[논설위원의 단도직입]
환경법 전문 변호사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8호’로 정계에 입문했다. 2012년 사법연수원(41기)을 수료한 뒤 환경과 에너지정책 전문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2016년 로펌 ‘김앤장’을 나와 사단법인 ‘기후솔루션’을 설립하고 부대표로 활동했다. 석탄발전에 대한 공적기금 투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석탄금융’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는 데 기여했다.
여름 초입인데도 폭염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아마도 올해 여름이 역사상 가장 뜨거울 가능성이 크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00년 이후 매년 ‘가장 뜨거운 해’를 맞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통 사람들은 여름철 폭염과 폭우를 통해 기후변화의 징후를 체감하지만, 기후변화는 경제적으로도 우리 삶에 적잖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탄소를 대거 배출하는 에너지 산업을 구조조정하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려가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활용을 의무화하는 통상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농산물 가격이 출렁거리고, 투자와 생활 방식이 바뀌고, 일자리도 움직이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이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 믹스’ 문제를 놓고 정치권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전 정부와 현 정부, 여와 야는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놓고 대척점에 서 있다.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의 탈원전 및 재생에너지 육성 정책을 ‘이권 카르텔’로 몰아붙이며 원전 중시 정책으로 회귀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31일 공개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에서 2038년까지 신규 대형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전 신규 건설이 전기본에 포함된 건 2015년 7차 전기본 이후 처음이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는가. 이대로라면 지구 온도 상승을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건 아닌가. 행정부의 ‘정책 독주’에 야당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이 문제를 물었다. 이 의원은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에서 일하고 국회에 들어와서는 21대 기후위기특별위원회에서 활약한 기후활동가이다. 22대 총선에서 기후 전문가로 영입된 초선 박지혜 의원과 민형배·한정애·김성환 의원 등 민주당 중진 등 15명이 지난 5일 결성한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뤄졌다.
이소영 의원은 “우리나라의 어떤 원전도 계획대로 착공하거나 준공된 원전이 없다. 신규 원전 3기를 2037년부터 가동하겠다는 계획은 가능하지 않다”며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기후도 경제도 망친다. 철회하고 완전히 새롭게 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석열 정부는 원전, 동해 석유가스전 같은 구시대적인 기술과 에너지에 집착하고, 재생에너지에 대해서는 전혀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국회가 진짜 머리띠를 두르고 투쟁이라도 해야 되는 상황이 됐다. (시민·환경운동단체와 같은) 과감하고 어쩌면 좀 과격하기도 한 기후 행동에 (직접) 나서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임 의원 기후·에너지 운동 한 가닥 하신 분들…‘화석연료와 결별’ 가장 큰 공감대
미국·유럽은 태양광·풍력이 원전·가스보다 싼데 우린 규제는 많고 지원 적어 더 비싸
분산에너지 활성화, 한전이 송·배전과 판매 독점해 취지 못 살릴 가능성 커
상용화도 안 된 소형모듈원전 포함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완전히 새로 짜야
동해 석유·가스전? 재생에너지 점프업 기회 놓치고 수출기업 해외로 내쫓게 될 것
-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이 만들어진 건 처음입니다.
“21대 국회에 기후·에너지 영입인재로 들어왔고, 기후위기를 막겠다는 다짐으로 정치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여당 소속 의원으로 효능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린뉴딜’을 국책사업으로 추진토록 하고,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을 하도록 하며, 탄소중립 기본법을 만드는 것 등이 목표였는데, 신기하게 의정활동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다 이루어졌어요.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지니 ‘정치를 선택하기 잘했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대통령이 바뀌고 야당이 되니 소소한 일들도 잘 진행되지 않았어요. 여야 간에 특별히 의견이 갈리는 법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행정부가 소극적이니 작은 것 하나도 제도 개선이 너무 어려운 거예요. 지금까지 했던 방식보다 훨씬 더 간절하고 절박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 의원 모임에서 가장 큰 공감대는 뭐였고 앞으로 활동 계획은 어떻습니까.
“가장 큰 공감대는 화석연료와 결별하는 것이죠. 이를 위해 입법과제 40개 정도를 정리해 담당 의원을 지정, 각각 발의토록 하고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그 법안을 통과시키는 입법 행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과 정부는 의지가 없잖아요. 우아하게 예쁜 법안을 만들고 상임위에서 질의하는 걸로는 정부가 전혀 움직이지 않으니 때로는 좀 과감하고 어쩌면 과격하기도 한 행동들이 필요한 상황이고, 앞으로 비상하게 해야 할 역할이라고 봅니다. 모인 의원들의 이력이나 면면을 보시면 다들 환경단체 등에서 기후나 에너지 정책 운동으로 한가락 하셨던 분들이에요.”
- 기후위기 상설위원회가 될 가능성도 있나요.
“국회에서 특별위원회를 만들려면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대표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기후특위 상설화가 양당의 총선 공약이었어요. 그리고 우원식 국회의장은 19대 국회 때부터 탈핵에너지의원모임의 대표를 지낸 기후·에너지 분야 대표 정치인이에요. 국회의장 경선 과정에서도 특위 상설화, 입법권 부여, 기후위기 대응 예·결산 심의권을 주겠다고 공개 약속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 되면 이상한 거죠. 더구나 기후 문제는 정쟁이 아니라 협치와 협력의 대상입니다. 지난달 국민의힘 김용태·김소희,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 등 여야 8개 정당 10명의 의원이 기후특위 상설화 촉구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기후 협치의 첫걸음인 셈이죠.”
- 그렇다면 기후위기에 대응해 가장 시급한 정책은 무엇일까요.
“재생에너지 비중이 바닥이라는 점이 매우 심각합니다. 재생에너지는 이제 새로운 통상질서가 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로 생산한 철강이나 자동차, 반도체 등이 모두 불이익을 받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유럽연합(EU)이 시범 가동에 들어간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입니다. 일종의 관세 부과인 셈인데 비슷한 개념인 탄소국경세는 미국도 검토 중이거든요. 그리고 프랑스는 전기차에 대해 생산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많이 배출될 경우 보조금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화석연료 기반의 전력을 줄이지 않으면 기업은 더 이상 공장을 국내에 둘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국내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기후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고 일자리 문제고 산업과 무역의 문제입니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EU 지역 내에서 생산되는 제품보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제품을 수입할 때, 탄소 초과분에 대해 EU 내 수입업자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것으로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된다. 사실상 관세가 오르는 효과가 있어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철강 등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 재생에너지가 한국에서는 아직 가성비가 낮고 변동성이 높아 한계가 있는 거 아닌가요.
“미국이나 유럽, 중국에서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원전이나 가스보다 저렴합니다. 반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이 높은 것은 규제가 많고 지원은 적은 탓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데도 태양광 시설은 주거 지역으로부터 500m 떨어져야 된다는 조례를 제정해놓은 지자체가 엄청나게 많아요.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논란 속에서 진행되다 보니 보수언론이나 보수진영이 재생에너지를 과도하게 공격하며 재생에너지가 유해하다는 왜곡된 관념이 생겨난 거죠. 그러다 보니 민원이 발생하고 지자체는 이를 규제하는 악순환이 생긴 겁니다. 태양광 시설을 깔 수 있는 땅이 나오지 않으니 입지 가격이 높아지고, 조금만 주민 민원이 있어도 인허가에 1~2년씩 걸리고, 그러니까 금융 조달도 어렵고 사업자들이 잘 하지 않게 됐죠. 반면 농업진흥구역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영농형 태양광을 할 수 있는 지원입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어요.”
- 재생에너지 발전을 해도 송배전망이 부실해 출력 제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제주도 등 특정 지역에 한정된 문제이고, 육지에서는 없어서 못 쓰고 있습니다. 물론 재생에너지는 일정하게 수요에 맞춰 공급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또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불확실성과 변동성에도 영국은 재생에너지 비중이 거의 절반 가까이 올라오고 있고, 이미 70%에 육박하는 국가도 많아요. 에너지저장장치(ESS)나 수요반응(DR) 기술로 전력 시스템을 안정시키는 등 단점들을 보완할 다양한 기술들이 개발됐고, 이에 따라 송배전망 등 전력계통들이 재생에너지에 적합하게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전을 지역에 짓고 대형 송전탑을 만들어 수도권 등 수요처에 전력을 보내는 중앙집중형 송전 구조를 고수하는 탓에 재생에너지 중심의 분산형 송전망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거예요. 빨리 전환하지 않으면 재생에너지도 빨리 늘어날 수 없습니다.”
출력 제어란 전력 과잉공급 상황이 벌어져 발전소 출력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전기의 물리적 특성상 정전은 전력 공급이 부족할 때뿐 아니라 공급이 넘쳐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발전기에서 생산되는 교류 전기는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이 반복적으로 바뀌며 전류 방향이 달라지는데, 한국은 1초에 전류 방향이 60번 바뀌는 60㎐(헤르츠)의 정격 주파수를 사용한다. 전력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을 때 주파수 변동 폭이 늘어나고 주파수가 허용 범위를 벗어나면서 정전이 발생한다.
- 수요지 인근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자급형 에너지 체계를 위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지난 14일 시행됐습니다. 전력 다소비 기업을 지역으로 유인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습니다.
“문제는 한전이 송배전과 판매를 독점하고 있어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한전의 독점 구조가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확대에 굉장히 큰 걸림돌이에요.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주요국 중 이런 독점적 전력 시스템을 운영하는 곳이 없거든요. 재생에너지 시대는 분산화, 다원화된 시스템이 특징인데 모든 송배전과 판매를 한전이 독점하고 있어 다원화한 수요자와 공급자 관계를 형성할 수가 없는 거죠. 모든 발전원들이 경쟁하다 보면 재생에너지 단가도 내려가는 건데, 우리나라는 그런 경쟁이 작동하지 않다 보니 재생에너지도 충분히 가격 하락이 이루어지지 않는 요인이 됩니다.”
- 반도체 산업이나 인공지능(AI) 대응을 위해 많은 전기가 필요하고 이에 따라 원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기존 원전은 안전하고 투명하게 관리한다는 전제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신규 원전을 만드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에요. 가장 큰 이유는 건설부터 실제 가동까지 너무 오랜 기간이 걸려서예요. 입지 선정 때부터 엄청난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에 10년 이상 걸립니다.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감안하면 생산단가가 비싸고, 사용 후 핵연료 같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반면 재생에너지는 빨리 건설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가장 저렴한 에너지입니다. 폐기물 처리 부담도 없어요. 그런 우월한 전원이 있는데 원전을 굳이 새로 지을 필요가 없는 거죠. 해외 금융기관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대기업의 78%가 2025년까지 탄소중립 전환이 미흡한 공급업체와의 거래 중단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업종이 반도체입니다. 반도체 ‘슈퍼 을’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노광장비 기업인 ASML이 2040년까지 고객사들을 포함해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만의 세계 1위 반도체 회사인 TSMC는 재생에너지를 2030년 60%, 2040년 100% 달성을 약속한 반면, 우리나라는 반도체 생산설비가 들어서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에 공급할 전력을 LNG발전소로 충당하겠다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높이는 각별한 노력을 전개해야 할 시기에 아직도 원전 타령을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생각해요.”
- SMR을 포함해 모두 4기의 원전을 건설하려는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기후위기 대응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계획안일 뿐 아니라, 탄소중립기본법에 위배되는 계획입니다. 신규 원전 3기를 2037년부터 가동하겠다는 게 가능할까요. 아까도 지적했지만 원전은 비싸고 시간도 오래 걸립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원전도 당초에 계획한 착공 시점에 맞춰 착공한 원전이 없고요, 당초에 잡았던 준공 시점에 맞춰 가동한 원전이 없어요. 입지 선정에서부터 엄청난 갈등이 시작되기 때문에 계획한 일정을 맞출 수 없거든요. 당장 2030년,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데 신규 원전 지어서 이걸 할 수가 없어요. 이번 안대로 하다가 기후도 망치고 경제도 망치고, 우리 수출기업들을 다 해외로 내쫓게 될 것입니다. 실무안을 철회하고 완전히 새롭게 다시 짜야 합니다.”
- SMR은 원전의 새로운 ‘구원투수’이고 원전은 수출할 수 있다고 합니다.
“SMR은 세계적으로 상용화돼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이제 연구·개발(R&D)하는 단계에서 이걸로 온실가스 감축하겠다고 하는데 이게 국가 정책인가요? 그리고 많이들 오해하는 게 원전은 지금 다른 국가들에서는 잘 선택되고 있지 않아요.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 원자력발전 비중이 원전 기술 이후 40년 만에 최저치인 9.2%밖에 안 돼요. 시장 규모가 점점 쪼그라들고 있어요.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보면 원전 투자금액이 재생에너지 분야의 하나인 태양광에 투자되는 금액 규모의 6분의 1보다도 적어요. 원전은 사양 산업이고, 재생에너지는 엄청 핫한 산업입니다. 지금 정부가 원전, 동해 석유가스전 이런 구시대적인 기술과 에너지에 집착하다 보니 우리는 재생에너지를 점프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동해 심해에 원유가스가 매장됐을 가능성을 밝힌 국정브리핑을 되돌아봤다. 지금까지도 대통령이 직접 브리핑에 나선 이유와 액트지오 분석 결과에 대한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설령 2030년 이후 우리가 산유국이 되더라도 지금 정부의 장밋빛 기대가 그대로 충족될 수 있을까, 의문이 더해졌다.
박재현 논설위원 park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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